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말을 달려 대사국에서 낙노국을 거쳐 이명산과 봉명산 사잇길을 지나 사물국으로 들어왔다. 사물의 고을들은 크지 않으나 가는 곳마다 저녁인데도 굴뚝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논밭에는 벌써 여물지 않은 곡식을 거둬들여 인가에 사람이 없는 듯 보였다. 말을 조금 더 달려가니 강가 마을이 나오고 강 너머 멀리 와룡산이 보였다.

강 나루터에는 주막이 있었다.

우사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여기가 바로 사수입니다. 날이 저물었으니 오늘은 여기 어촌 주막에 하루를 머물고 내일 강을 건넙시다.”

하지왕이 강 건너 와룡산을 보며 말했다.

“내 마음은 오늘 밤이라도 당장 배를 타고 와룡산으로 달려가 명림원지를 만나고 싶소.”

“석공스님도 삼훈삼목과 삼고농을, 삼고초려를 말하지 않았습니까.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에 와륵선생을 만나도 늦지 않습니다.”

셋은 사수강 어촌 나루터에는 주막으로 들어갔다. 좁은 주막에는 낯선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모가 나오는데 시골 주막에서 보는 늙은 노류장화가 아닌 젊은 미색이었다.

우사가 주모에게 말했다.

“오늘 여기서 숙식을 하고자 하오.”

주모가 말을 탄 세 사람의 행색을 살피더니 말했다.

“들어오세요. 오늘 왜에서 건너온 왜인들이 많아 구석방을 줄 수밖에 없네요.”

“왜인들이 여길 옵니까?”

“여기 초행길이세요? 지금 남해안에는 왜구들이 쳐들어와 분탕질을 하고 온통 자기들 세상으로 만들어놓은 걸 모르세요. 저 같은 미천한 년이야 돈만 벌면 그만이지만 나라꼴이 말이 아니에요.”

“음, 일단 배가 출출하니 국밥하고 농주나 주시오.”

과연 주막 안에는 칼을 찬 왜인 여럿이 술을 놓고 여자들과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하지왕 일행을 보고 왜인들이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무엇하는 놈들인가? 강 건너에서 온 사물성 가야인들인가?”

모추가 칼을 빼려고 하자 우사가 말리며 왜말로 말했다.

“우리는 그냥 지나가는 과객인데 날이 저물어 여기에 하룻밤 묵으려고 왔소.”

“당신은 어떻게 왜말을 알고 있나? 네놈들은 사물성 한기가 보낸 세작이 아닌가!”

왜인이 칼을 빼며 다가왔다.

“옛날 금관가야에서 목라근자 장군 휘하의 왜병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왜말을 조금 배웠소.”

무리 중에 우두머리인 듯한 왜인이 나와 칼을 뺀 왜병을 제지하며 말했다.

“목라근자 장군 휘하에서 일했소? 나도 그때 용병으로 건너와 목장군과 함께 신라와 고구려 병사들과 싸웠지. 반갑소.”

 

우리말 어원연구

대사국: 현재 하동.

낙노국: 현재 악양.

사물국: 현재 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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