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남목중학교 교사

“선생님은 저희 졸업식 때 절대 안 우실 것 같아요.” “그래. 나 원래 잘 안 울어.”

고입선발고사를 치르고 난 후 3학년 교실 안에 옅게 감돌던 긴장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마냥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아이들은 12월 말부터 졸업식 전날까지 취약시기 학사운영 계획에 따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반복했다. 고입선발고사를 치르기 전부터 그날의 수업 진도를 다 나간 후 가끔 나와 함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나누곤 하던 앞 반 아이들은 자신들의 졸업식 날에도 내가 절대로 울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나 또한 여태껏 아무리 정든 제자들을 떠나보내도 슬퍼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서운하긴 해도 쿨하게 안녕을 고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제9회 졸업식이었던 지난 금요일, 공식 일정을 마치고 담임 반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던 나는 말을 잘 잇지 못할 정도로 계속 울고 있었다. 한 명, 한 명 가족들과 함께 꽃다발을 들고 와 사진을 찍자고 할 때마다 눈물이 났다. 세심하고 꼼꼼한 아이에게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무신경한 담임이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았을까 싶어서 미안했고, 늘 교무실에 들러 심부름을 도맡아 해주던 아이에게는 고생한다고 격려라도 해줄 걸 후회가 들어서 미안했다. 그리고 다른 반 아이들에게는 꼭 전하고 싶었던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다음날까지도 마음이 아려왔다.

1학년 입학 직후부터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참 착하고 인사성 좋다’는 칭찬을 받았던 3학년 아이들은 내가 2년 동안 역사와 사회를 가르치며 실험정신(?)으로 시도한 여러 가지 수업 방식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었다. “우리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도 우리와 같이 공부하는 것 같아 좋아요”라는 말로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아 주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고마웠던 건 나를 ‘쌤’이 아닌 ‘선생님’으로 불러주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기혼에 어린 딸이 있는 30대 중반의 아줌마인데다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아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성을 다해 소통해서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살아가는 시대가 다르고, 세상은 더 빨리 변하고 있지만 먼저(先) 그들이 가는 길을 걸어보았기에(生) 있는 힘껏 그들의 길을 밝혀주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여겼다.

아이들 중 누군가는 희망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누군가는 최선이 아닌 차선의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그 사이에 어떤 과정이 있었든 그들은 고등학생이 된다. 이왕 고등학생이 된다면 행복한 고등학생이 되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서 행복한 고등학생이라니, 이토록 아이러니한 표현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들로 인해 내가 선생님으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알게 된 것처럼 그들 또한 지금부터 주어진 3년의 시간을 잘 벼려서 다음 번 졸업식은 더 기쁜 얼굴로 맞이하면 좋겠다. 이 지면을 빌어 교실에서 못다 했던 말들을 몇 마디만 하고 싶다. 남목중학교 제9회 졸업생들아, 너희라서 의미 있는 날들이었다는 감사의 인사를 이렇게 전하게 되었어. 너희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직접 보고, 또 전해 들으며 선생님 또한 더 성장해 있을게. 많이 그리울 거야. 안녕~.

이정현 남목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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