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텍 노동자 ‘굴뚝농성 97일째’…소녀상 지킴이들 천막 지켜
대학 청소노동자·금융노조도 투쟁 계속…“떡국은 동지들과”

“명절이니 당연히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죠. 이번 설날에는 못 가지만 투쟁에서 꼭 승리하고 싶습니다.”

16일 서울 양천구 서울에너지공사 목동열병합발전소 75m 높이의 굴뚝에서 97일째 고공 농성 중인 박준호(45)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은 공중에서 설을 맞는 심경을 이같이 전했다.

천막 제조업체 파인텍 근로자인 박 사무장은 지난해 11월 12일 홍기탁(45) 전 파인텍지회장과 함께 공장 정상화와 단체협약 체결, 노동악법 철폐 등을 요구하며 맨몸으로 굴뚝에 올랐다.

모회사인 스타케미칼의 일방적인 공장 가동 중단과 정리해고에 반발해 2014년 5월 27일부터 2015년 7월 8일까지 408일간 고공 농성을 벌인 차광호 지회장에 이은 두 번째 농성이다.

박 사무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굴뚝을 오르면서 ’힘든 싸움이 되겠구나‘ 싶었다”면서도 “이번 겨울 말도 못하게 추웠는데 밑에 있는 동지 3명을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동안 농성·파업을 해도 명절이면 집에 다녀오곤 했지만, 이번에는 폭 70㎝ 안팎의 공간에서 홍 전 지회장과 단둘이다. 이들의 농성을 돕는 시민사회연대체 ‘굴뚝 고공농성 친구들’은 이날 오전 떡국을 끓여 굴뚝 위로 올린다.

지난달 29일부터 중구 동국대 본관 로비에서 철야농성 중인 47명의 청소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재정 부담을 이유로 대학이 청소노동자 인력을 감축하자 반발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설날을 하루 앞둔 15일 본관 건물 근처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이 “미안하다. 이번에는 설날에 같이 못 있겠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명절에 푹 쉬어”라며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박 모(65·여) 씨는 “이렇게 농성하는 것은 내 평생 처음”이라면서 “명절 음식도 하지 않고 아들과 딸, 며느리, 손주들에게 전화로 ’미안하다‘는 말만 했는데 마음이 착잡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휴 내내 농성을 이어가는 만큼 조상에 대한 예는 합동 차례상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동국대시설관리분회에 따르면 학생들도 나서 차례상을 준비하고 떡국도 나눠 먹을 계획이다.

서울일반노조 관계자는 “설날을 집이 아닌 곳에서 처음 보낸다는 분이 많다. 명절인데 정말 마음이 안 좋다”면서 “학교가 나서서 빨리 대화를 하고 문제 해결 의지를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틀 후부터 현재까지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농성을 하는 ‘소녀상 농성 대학생 공동행동’도 설날에 자리를 뜨지 않고 천막을 지킨다.

농성 초기부터 참여했다는 강 모(23·여) 씨는 “우리에게는 천막에서 세 번째로 맞는 설날이지만, 할머니들에게는 해방 이후 몇십 번의 설날이 지났다”면서 “하지만 아직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주사 회장 퇴진·생존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금융업계의 농성도 계속된다.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전국보험설계사노조 현대라이프 지부 등도 컨테이너·천막 등에서 농성을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