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우사가 이쿠노에게 말했다.

“내 아들이오. 나도 고구려의 침입 후 장사꾼이 되어 아들과 함께 가야 전국을 떠돌아다니고 있소.”

“하, 내가 알기로 우사 선생은 가야의 역사를 담당한 지체 높은 문관이셨는데 장사꾼이 되다니 의외인 걸. 그쪽은 우리보다 더 수상쩍군요. 그래서 우리 부하가 사물성 한기의 세작으로 오인한 것 같소.”

이들은 어울려 술을 마신 뒤 각자 숙방으로 들어갔다.

이쿠노는 우사와 마주쳐 자신의 신분이 노출된 것이 찝찝했다. 이쿠노가 가야제국 중 먹이로 생각한 것은 사물국이었다. 사물국의 한기는 뇌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밝혀 민생과 국방에는 소홀히 했다. 남해안의 금관, 아라, 고자미, 대사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인 사물국을 치기 위한 정탐활동을 위해 이쿠노는 심복들을 거느리고 사물국으로 잠입한 것이다.

그는 일부러 부하들에게 장사꾼으로 보이게끔 술을 먹게 하고 기녀들에게 수작을 걸고 난하게 놀게 했다.

왜인들은 기녀들과 어울려 진탕하게 마시고 웃통을 벗고 급기야 고쟁이를 풀고 지저분한 짓거리들을 해댔다.

기녀들은 왜인들의 돈을 받고 함께 뒤섞였다.

“점잖은 분들이 고향을 떠나 가야에 오니 괜히 마음들이 달뜨신가봐. 자, 구강주부터 한 잔 말아드릴까요.”

“이분은 작은 물건으로 뭘 그리 들이데요.”

기녀들은 거미처럼 왜인들에게 들러붙었다.

사천나루 주막 숙방에서 여인들의 앓는 소리가 들려올 때 모추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칼을 뽑아 옆의 숙방으로 쳐들어가려고 했다. 하지왕과 우사가 제지했다.

하지왕이 모추에 말했다.

“모추.”

“왜놈들이 가야여인을 능욕하는 것을 정말 참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칼을 집어넣어라. 언젠가 네 칼날이 번뜩이며 천하를 호령할 날이 있을 것이다.”

모추는 하지왕의 말에 굴복해 칼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왜놈들이 개처럼 헐떡이는 숙방의 옆 봉놋방에서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나란히 누워 잠을 못 이루며 전전반측하고 있었다.

하지왕은 봉놋방에 누워 눈물을 흘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라가 힘을 잃으니 고구려, 가야, 백제, 왜가 가야를 먹어치우는구나. 400년 역사의 가야가 마치 잔칫집 접시 위에 썰어놓은 시루떡처럼 없어지고 있구나. 내가 고구려의 광개토왕이나 진황한무처럼 강한 왕이 되지 않으면 이 가야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자정이 지나 피곤을 마련으로 셋이 잠들었을 때 조용히 봉놋방 문이 열리며 칼날이 번뜩였다.

 

우리말 어원연구

진황한무: 秦皇漢武, 진시황과 한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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