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여재산보다 부채가 더 많을땐
파산절차 밟아 공정하게 변제하는
법인의 공식적 장례로 혼란 줄여야

▲ 정현수 울산지방법원 판사

울산지방법원에서 필자는 법인파산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담당업무를 말하면 ‘왜 법인파산신청을 하는가’라고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의 경우에는 면책을 받기 위해서 파산신청을 하지만 파산신청 자체가 목적인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면책이란 파산한 채무자에 대하여 채무자회생법상의 면책불허가 사유를 심리하여 불허가 사유가 없다면 면책허가를 하게 되고, 그것으로 채무자는 잔여 채무에 관한 책임을 면하게 되는 제도이다.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 파탄한 채무자는 재출발과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하지만 법인의 경우에는 파산절차만 있을 뿐 면책절차는 없다. 대신 법인의 경우는 파산절차가 종료되면 법인 자체가 소멸된다. 재출발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도산한 법인의 경우에는 회생신청 등으로 재기가 불가능하다면 파산을 신청하기 보다는 단순히 폐업신고를 하고 사무실을 폐쇄하는 것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폐업을 한 후 몇 년 동안 별도의 등기사항 신고가 없다면 해산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산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파산신청서와 청산재무제표, 채권자목록, 자산목록 등을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하고, 심문기일을 거쳐 일정한 액수의 예납금을 납부하여야 비로소 파산절차가 개시된다. 그래서 많은 소규모 법인인 경우에는 도산 상황이 오더라도 법인파산신청을 주저한다.

그렇다면 왜 법인 파산신청이란 제도가 있는 걸까. 분명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청산 중의 법인의 재산이 그 채무를 다 갚기에 부족한 것이 분명하게 된 때에는 청산인은 파산을 신청할 법적인 의무가 있다. 그것이 부채초과인 법인을 청산시키는 공식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인의 대표자가 파산을 신청하는 것은 대표자로서의 마지막 의무를 다하는 일이 된다.

둘째, 파산을 신청하게 되면 파산관재인이 선임되어 법인의 재산상 모든 관리처분권을 가지고 청산절차를 밟게 되므로 법인의 종전 대표자는 더 이상 법인의 대표자로서의 채무 독촉이나 잔여 업무 정리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다. 보통 법인의 사무실이 없게 된 후에도 법인등기부 열람 등을 통해 대표자를 찾게 되므로 파산을 신청하지 않는다면 어쨌거나 계속하여 법인 대표자로서의 의무를 져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근로자의 체당금 문제 때문이다. 만약 미지급된 임금과 퇴직금이 있는 경우 파산선고 등의 사정이 발생하면 근로자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일정 범위 내의 임금과 퇴직금인 체당금을 받을 수 있다.

도산절차는 파산절차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채무를 다 갚기에 부족한 상태가 분명해지면 채권자들은 대표자를 내세우고 그가 채무자의 모든 재산을 처분한 대가를 채권자들에게 공정하게 나눠주는 파산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이러한 파산절차가 없다면 채무자는 자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잔여재산을 변제하게 될 것이고, 채권자들은 각자가 채권추심에 나서서 채무자의 재산 상황에 밝고 발빠른 채권자가 우선하여 변제를 받게 될 것이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채권자로서는 그 후에는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률관계는 여전히 혼란 속에 있게 된다. 법인파산절차는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부채초과인 법인의 잔여재산을 공정하고 질서 있게 채권자들에게 변제하는 절차이다. 비록 다소간의 노력과 비용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훨씬 많다.

매년 법인파산사건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와 비교해 보면 현재의 사건 수는 적은 것이 사실이다. 도산한 법인의 공식적이고 질서 있는 장례절차로서 법인파산절차가 널리 이용되기를 기대한다.

정현수 울산지방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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