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간의 여정 끝낸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 20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7∼8위 순위 결정전 남북 단일팀이 스웨덴 경기를 마친 뒤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5전 완패 초라한 성적에도
“올림픽 정신”“노벨평화상감”
IOC·외신 등 극찬 쏟아내

올림픽 사상 첫 단일팀을 이룬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여정을 마감했다. 5전 전패에 2득점, 28실점의 초라한 성적표지만, 남북의 자매가 하나가 돼 투혼을 발휘한 모습은 그 자체로 금메달감이었다.

단일팀이 결정된 것은 지난달 22일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남북 대표단이 모여서 합의에 이르렀다. 우리 선수 23명에 북한 선수 12명이 가세해 총 35명으로 올림픽 사상 첫 남북단일팀 선수단이 꾸려졌다.

올림픽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단일팀이 결성됐다는 소식에 새러 머리(30·캐나다) 감독을 비롯해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패닉에 빠졌다.

국민적인 시선도 곱지 않았다. 남북 단일팀 논란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로 논란은 뜨거웠다. 사흘 뒤인 지난달 25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 도착한 북한 선수단을 맞이하는 한국 선수들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한 선수는 “(단일팀이) 망하지 않으려면 (북한 선수들과) 잘 맞춰봐야죠”라고 했다. 솔직한 속내였다.

대학은 물론 실업팀 하나 없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올림픽 하나만을 바라보고 지금껏 달려온 한국 선수들에게 북한 선수들은 무임승차한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남북 선수들이 빠르게 하나가 됐다. 라커룸을 함께 쓰고,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같은 라인에서 손발을 맞추면서 남북 선수들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훈련 때는 진지하지만 잠시 쉴 때면 웃고 떠들며 장난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또래 친구 같았다.

미국 입양아 출신 박윤정(마리사 브랜트)과 이진규(그레이스 리)는 북한 김은향과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셀카도 찍었다. 머리 감독은 “남북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러면서 경기를 준비한다”고 했다.

한 외신 기자가 ‘북한 선수들도 춤을 췄느냐’고 묻자 머리 감독은 “북한 선수들도 춤을 췄다. 한국 선수들이 북한 선수들에게 케이팝 댄스를 가르쳐주더라”라며 웃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드디어 단일팀이 경기에 나섰다. B조 조별리그에서 강호들과 만났다. 몸을 날리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 싸웠지만 현격한 실력 차이까지 극복할 수는 없었다.

단일팀은 스위스, 스웨덴에 연달아 0대8로 무너졌다. 재앙과도 같은 결과였지만 북한 선수들을 탓하는 한국 선수들은 적었다.

북한 선수 12명이 기량 자체는 부족하지만, 단일팀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고, 경기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기 때문이다.

단일팀은 지난 14일 일본전에서 랜디 희수 그리핀이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을 넣었다.

단일팀은 남북 선수 가릴 것 없이 뜨겁게 부둥켜안았다. 영국 BBC는 “아름다운 골이 아니라 역사적인 골이다. 한 골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20일 스웨덴과 최종전에서는 한수진이 단일팀의 두 번째 골을 터트렸다.

단일팀은 짧은 기간 안에 하나로 똘똘 뭉치며 지금은 휴전선을 경계로 대치 중인 남과 북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남북 단일팀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했다”며 “이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출신의 앤젤라 루제로 IOC 위원은 “단일팀이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숨 가쁘게 달려온 단일팀의 여정도 막을 내렸다.

1991년 탁구와 축구 납북 단일팀이 그랬던 것처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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