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수 문화도시울산포럼 고문

세계 산업박물관 중 가장 규모가 큰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은 75개의 전시실과 2000점이 넘는 전시품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은 독일잠수정 U-보트가 있는 전시관이다. U-보트는 2차대전때 연합군 함선 2732척을 침몰시킨 무서운 존재였다. 1942년은 1130척이 격침됐다. 미국은 대서양을 횡단하는 수송선단 보호를 위해 특별함대를 조직하고 예상 출몰지점에 구축함과 비행기로 집중감시 하다가 1944년 6월4일, 독일잠수함 U-505호를 포착하고 폭뢰로 공격해 나포한다. 포로는 비밀에 부쳤다가 종전후 돌려보냈다.

종전이 되자 U-보트는 뉴헴프셔주 해군조선소에 보관됐다. 당시 함장의 아버지가 ‘해군장병들이 목숨을 걸고 노획한 적함을 시카고박물관에 기증하자’고 캠페인을 벌여 25만달러를 모금했다. 대서양 해안에서 시카고까지 5대호를 거치며 3000마일을 이동하는 경비는 엄청났지만 독일, 영국, 미국에 각 한 대씩만 남은 U-보트를 옮겨 먼저 자리를 잡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1954년 일이다. 그런 노력으로 오늘의 명성을 얻었다. 나오시마 지추(地中)미술관, 모네의 수련이 있는 오랑주리미술관, 메트로폴리탄의 새클러윙(The Sackler Wing)은 모두 사전계획으로 목적에 맞게 건축하고 디자인한 홀의 사례다.

울산미술관의 개관전 커미션 워크는 뭔가. 가변 벽이 설계됐는데도 건물에 미술품을 맞춘다는 얘긴가 아니면 미술품에 맞춰 건물을 디자인한다는 말인가. 외국호텔들은 객실의 벽마다 그림을 건다. 기획사에 맡겨 값비싼 원화작품 몇 점 구입조건으로 호텔브랜드에 맞는 프린트그림이나 사진을 일괄구매로 객실 벽 인테리어를 한다. 영종도의 리조트 카지노호텔도 그런 기획이다. 국제도시를 지향하며 공공미술관을 구상한다는 팀의 수준이 전혀 엉뚱한 호텔 벤치마킹 이라니, 미술관의 소장품을 인테리어 디자인영역으로 생각한 발상이 충격적이다.

울산은 ‘세계최초 미술관’을 만들 수 있다. ‘최초‘는 결코 수사(修辭)가 아니다. 먼저 아이티센터(IT Center)의 운영이다. 전국 초·중·고에 명화와 미술사자료를 인터넷방송으로 제공하고 각 학교는 교실에서 TV모니터로 공부하게 한다. 실제크기의 복제명화는 울산미술관에서 체험, 감상한다. 그랬을 때 전국학생들이 졸업때까지 몇번 울산을 방문할까. 교육관 프로그램의 더 큰 목적은 청소년들의 심성과 정서순화에 있다. 정부의 연관부처 예산지원을 당연히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다목적 대형 강당(Hall)을 조성해야 한다. 매일 전국의 관람자를 수용하고 명화해설로 미술사를 배우는 장소로 1000석 이상의 홀을 만드는 것은 필수사항이다. 그리고 미술관을 음악, 강연 집회 장소로 활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e스포츠(비디오게임)의 전국리그가 가능한 경연장으로 콘텐츠를 선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울산은 한국 e스포츠의 메카는 물론 세계대회까지 유치할 도시가 된다. e스포츠는 2022년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2024년 올림픽 종목으로 추진 중이며 스미소니언박물관이 미술영역에 포함시켰다.

시민의 무관심과 공직자의 비양심은 도시의 문화를 황폐시킨다. 태화루는 100억원의 기부금이 투입됐으나 내세울 것이 없다. 같은 시기에 만든 백양사 대웅전은 80억원 예산을 들여 전국 최고의 건축물과 단청을 만들어 울산의 관광자원이 됐다. 영남알프스 케이블카사업도 전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날 때다. 도시 인근 명산에 설치하는 케이블카는 관광 진흥의 촉진제가 되는 건 사실이다. 사업개발권을 민간사업자에 맡겨 관광산업을 지원 육성하고 그를 통해 세수를 올리는 것이 선진국의 예다. 그 예산을 도시 기반시설에 투입해야지 민간이 해도 될 일을 구태여 행정에서 맡아 할 이유가 없다. 인적, 물적 낭비다.

결정권자가 고향을 가꾼다는 진정성만 있으면 절대로 욕먹을 흔적은 남지 않을 것이다. 미술관마다 활성화를 숙제로 특화전략에 고민한다. 관객이 많은 전시관은 작가들이 스스로 찾아온다. 현대작품 수집은 개관후 기획전으로 가능한데 예산집행이 궁리(窮理)라면 전통한국화 수집이 우선이다. 적은 예산으로 많은 작품을 구할 수 있는 적기로 명분이 선다. 미술관 만든다고 소중한 문화유산 다 없앤 도시다. 시민이 방관한 탓이다. 국제적 이슈가 될 ‘세계최초 미술관’프로젝트도 폐기 직전에 놓였다. 어떤 미술관이 울산발전의 축이 될지 시민 각자가 판단할 문제다.

김종수 문화도시울산포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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