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화예술계로 옮겨붙으면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을 통해 원로 시인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폭로하면서 문화예술계에서 간간이 터져나오던 성추행 실상이 하나둘 드러날 것으로 관심을 모았으나 정작 문단에서의 미투는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설을 며칠 앞둔 지난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연극계의 거물로 불리는 이윤택씨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자 연극계의 해묵은 성추행 관행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특히 이윤택씨는 수년전부터 울산시의 지원을 받아 ‘태화강 이야기’ ‘충숙공 이예’ 등의 울산을 대표하는 공연물을 연출·각색하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울산지역 공연예술계는 물론 시민들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문학·미술·영화 분야에서 시범적으로 진행해온 성폭력 실태조사 범위를 문화예술·출판·대중문화산업과 체육 분야까지 확대키로 했다. 예술인복지재단에 신고·상담센터도 설치했다. 특히 영화계와 대중문화계에는 별도 신고창구를 운영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신고창구를 설치하고 성폭력 피해자뿐만 아니라 목격자 등의 제보도 받는다고 한다. 여성가족부가 아니라 문체부가 이처럼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은 문화예술계의 실상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그렇다고 문화예술계로 한정할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울산에서도 강건너 불구경 할 때는 아니다. 성폭력상담소가 없진 않지만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활동하는 여성단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연대를 통한 지역사회 의식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는 것이 울산의 현실이다. 미투운동은 사회적 분위기 형성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직도 사회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는 울산지역 피해자가 없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무조건 덮으려고만 해왔다. 이번 미투운동은 곪을대로 곪은 상처가 터져나온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이뤄짐으로써 성폭력이 줄어들도록 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성폭력 피해자가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가 절실하다. 미투운동 못지 않게 휘슬블로어(whistle-blower·내부고발)와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 ‘위드유(With You)’운동도 활발해졌으면 한다. 미투운동은 건강한 사회를 위한, 힘 없는 자들의 용기 있는 발걸음이다. 문화예술계를 넘어 사회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울산 차원에서도 새로운 제도와 사회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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