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왜술에 취한 소아주가 춤추는 기녀들을 보며 말했다.

“물을 건너와서 그런지 관능적인 몸이로다. 하늘 선녀의 몸이 이렇게 생겼으렷다.”

가야 여인에게서 볼 수 없었던 자유분방한 옷차림과 관능적인 춤사위는 소아주의 넋을 거지반 빼놓았다. 소아주가 더 이상 참지를 못 하고 기녀의 허벅지를 부여잡고 한 입 깨물어 버리려는데 낯선 사람이 알현의 청을 하며 읍을 했다.

“한기님, 지나가는 과객입니다. 긴히 말씀드릴 게 있어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불청객의 등장으로 흥이 깨진 소아주는 들고 있던 술잔을 놓으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우사를 보곤 말했다.

“즐거운 잔칫날에 어디서 굴러온 개뼉다귀인가? 무엄하게도 감히 삿갓도 벗지 않고 내 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우사가 엎드려 소아주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한기님, 생신을 감축 드립니다. 몇 년 전 한기님을 뵈온 적이 있습니다만.”

소아주가 게슴츠레한 눈을 크게 떠서 보며 말했다.

“나도 네 놈의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듯하다만, 긴한 일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헛말이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제번하옵고, 지금 왜병들이 남해 바다 비토섬에 진을 치고 있고, 왜의 세작들은 사물 땅에서 활발한 정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곧 이곳 사물성으로 쳐들어올 것 같습니다. 성의 방비를 튼튼히 하시고 위험에 처한 백성들을 살피소서. 지나가는 길에 왜병을 목격한 같은 가야인으로서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위급한 사태를 한기님께 알려드리고 물러납니다.”

우사가 강 건너 보고 온 정황을 이야기했다.

“왜병이 쳐들어온다고? 지금 눈앞에 왜왕이 나의 생신강으로 기녀들과 공물을 보낸 것을 보지 못하는가. 왜병이 쳐들어올 리가 없네. 서촌 소가 웃을 소리야.”

“서촌 소가 웃을 일이 아니라 섭천 소가 웃을 일입니다. 이 성에 번듯한 문무백관들이 많지만 중국의 충신 개자추와 이소와 같은 자가 없는 게 한스럽습니다. 소인은 할 말을 했으니 이만 물러납니다.”

우사는 읍을 하고는 서둘러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설마 적들을 스스로 궁중으로 불러들일 줄은 몰랐다. 이런 암둔한 주군을 모시고 있는 관리와 민초들이 가련했고, 목숨을 걸고 충언을 하러 성안으로 들어온 자신이 어리석었다.

그 때 소아주가 갑자기 신하들에게 소리를 쳤다.

“저 놈을 잡아라! 현상금이 붙은 금관가야의 우사다!”

한기의 말에 사물의 병사들이 우사를 잡으려고 칼을 뽑고 우르르 달려들었다.

 

우리말 어원연구

생신강: 生辰綱, 생신 예물.

서천 소의 어원은 섭천 소라는 설이 있다. 섭천은 옛날 진주 섭천에 소를 잡는 백정마을이 있었고, 백정에게 죽으러 가는 소를 섭천 소라고 했다는 것이다. 소도 웃지 않거니와 죽으러 가는 소는 더욱 웃을 일이 없기에 어이없는 말을 듣거나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서천 소가 웃을 일이다’고 한다. 섭천의 ‘ㅂ’ 탈락은 십월이 시월이 되듯 국어에 나타나는 음운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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