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또 오해영’은 ‘해영’이라는 흔한 이름을 가진 여성의 비애(?)와 사랑을 코믹터치로 그렸다.

수많은 동명이인을 배출하는 이름을 가진 당사자는 나름 불만도 있고, 살면서 불편함을 겪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접근성이 좋고 특이점이 없는 이름이 무난하고 무탈한 인생을 이끈다고 믿는 어른들도 많다.

시대에 따라 인기있는 이름도 달라진다.

여성의 이름은 영자, 경숙, 숙희, 정순 등이 1960년대 이전 세대를 상징하고 은정, 지은, 지현, 수진, 혜진 등은 1970~8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게 흔했다. 이후에는 나리, 하늘, 유리, 빛나, 슬기 등 보수적인 작명법을 뛰어넘는 참신한 이름들이 만개했다.

‘영미’ 역시 한국인에게 대단히 친숙하고 익숙한 이름이다. 비록 교과서에서는 ‘철수와 영희’의 ‘영희’에 주인공 자리를 내주었어도 우리 사회에서 그 못지 않은 채택률을 자랑하는 이름이었다. 다만, 지금이 아니라 1980년대 이전에 말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이 ‘영미’에 빠졌다.

“내가 영미였으면 좋겠다”는 즐거운 외침이 댓글로 이어지고, 다양한 강약과 호흡으로 ‘영미’를 불러보는 놀이가 펼쳐진다. 세계도 주목한다. 심지어 ‘영미’가 특정 기술이나 선수 간 암호라고 생각하는 외국인들도 있단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기적의 드라마를 열심히 쓸어내고 있는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 덕에 인기순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던 이름 ‘영미’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영미~”를 절박하게 외치는 ‘안경 선배’를 따라 남녀노소가 ‘영미’를 따라 부른다. 그것도 아주 신나게.

‘힘쎈여자 도봉순’ ‘내 이름은 김삼순’ ‘오! 필승 봉순영’ ‘달자의 봄’ ‘굳세어라 금순아’ ‘불어라 미풍아’…. TV 드라마들이 제목으로 내세웠던 여성의 이름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소 촌스럽지만 정감이 물씬 어린 이름들이다. 이러한 이름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사실은 알고보면 약간 비범한) 주인공이 씩씩하고 밝게 삶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는 대부분 시청자의 공감과 감동을 끌어내며 성공했다.

평창올림픽에서 펼쳐진 각본 없는 감동 드라마의 제목에는 ‘영미’가 등장했다.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제목이 인구에 부지런히 회자해야 하는데, ‘영미’가 지금 그러하다. 마늘밭에서 나온 ‘영미’가 열화와 같은 이구동성을 타고 우리에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

1년여 전 불쑥 등장한 어떤 이름 탓에 “이게 나라냐?”며 호흡곤란에 시달렸던 대중이 요즘 ‘영미’ 덕에 유쾌, 상쾌, 통쾌함을 느낀다. 듣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면서 미소가 피어오르고, 기분이 좋아지는 집단기억을 탑재한 이름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다 같이 “영미, 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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