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성동 소설가 울산호랑이생태원 공동추진위원장

좀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반구대범이 첨단 백호로 변신해 2018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 나타났다. 이 첨단 백호는 호랑이의 메카였던 울산 대곡천 반구대암각화에서 뛰쳐나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호동물이다. 선명한 미역줄무늬, 강력한 송곳니, 날카로운 발톱은 호화찬란한 생김새만큼이나 강력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올림픽 스타디움 정중앙에서 내뿜는 백호의 개막식 호령을 지켜보던 모두가 체면술에 걸린 듯 압도당하는 순간이었다. 거기다 호랑이 등뼈인 백두대간을 환상적으로 펼친 ‘행동하는 평화’라는 주제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한반도의 정세만큼이나 드라마틱하기까지 했다.

첨단 백호는 개막식 행사를 지켜보고 있던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목숨을 걸고 한반도 주변 4개국을 탐험 중인 나 자신을 모티브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했다. 호랑이가 올림픽 스타디움에 나타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의 일이다. 88서울올림픽에는 호돌이를 마스코트로 사용하였고, 이번 평창올림픽 역시 백호를 사용함으로써 호랑이는 한국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각인이 되었다.

전국의 생태연구가들이 범(虎)의 메카인 울산에 모여 호랑이생태원 추진에 나섰다. 울산에 호랑이생태원이 설립된다면 호랑이의 본고장임을 인정받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호랑이생태원을 울산에 설립할 타당성은 호랑이·표범의 역사성에서 기인한다. 여기에는 서식지로서의 뛰어난 보존 환경도 한몫을 한다. 역사적 측면에서 반구대암각화를 통해 울산을 알릴 수 있고, 나아가서는 남북협력 소통의 도구로써도 활용이 가능하다.

흔히 반구대암각화하면 고래를 떠올리지만, 알고 보면 육지에 자리한 반구대암각화의 중심축은 호랑이와 표범에게 있다. 지난 1월 울산대학교 반구대연구소에서 3D로 정밀실측한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353점의 암각문 가운데에는 육지동물이 고래보다 두 배가 더 많은 것으로 분석되어 있다. 특히 고래 다음으로 많은 동물이 범이었다. 3D 정밀실측으로 확인된 범이 23마리, 불명확한 암각문까지 합치면 30마리나 된다. 이것은 러시아, 중국, 북한으로 흩어져 있는 범의 메카가 울산이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거기다 1944년 신불산표범, 1960년 가지산표범 두 사진은 불과 반세기전만해도 울산에 범이 살았음을 입증하는 귀중한 단서이다.

호랑이 콘텐츠는 확장성과 경제적 가치가 무궁하다. 바다의 고래가 수족관에 갇혀 학대 받고 있는 반면에 호랑이는 많은 관광객을 야외로 부를 수 있는 국가 브랜드급 동물이다. 영남알프스와 대곡천을 아우르는 ‘호랑이특구’를 ‘장생포 고래특구’와 연계한다면 지역관광 소득원을 창출시키고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가 있다. 울산의 또 다른 강점은 호랑이·표범 유전체 연구에서 세계적 선도주자라는 점이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에서 이룬 호랑이·표범 게놈지도는 멸종위기에 처한 호랑이 표범의 보존·복원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 놓았다.

호랑이는 누구나 호기심이 가는 동물이다. 한국을 상징하는 동물을 묻는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국민의 약 80% 가까이가 호랑이를 선택했다. 2위 진돗개, 3위 곰 두 동물을 합쳐도 10%에 못 미친 수준인 걸 보면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 저변에는 호랑이가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국제적인 설문 조사에 의하면 호랑이는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로 꼽힌다. 아직 호랑이를 국가 브랜드로 사용하는 국가가 없다고 하니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먼저 채택해 볼만하다.

밖에서 봐야 안이 보인다. 울산은 밖에서 보면 볼수록 더 매력적인 도시이다. 하지만 울산은, 아니 한국은, 천혜의 호랑이 유산을 물려받았음에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에 나타난 첨단 백호가 호랑이 등에 올라탈 헌걸찬 장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으흥!’

배성동 소설가 울산호랑이생태원 공동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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