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미투(MeToo)운동이 지방도시로 숨가쁘게 번지고 있다. 부산과 밀양, 김해 등지의 연극·영화계에서는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미투가 쏟아지고 있다. 유명 영화배우가 된 연극인이 지방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성추행 행위를 고발하는가 하면 극단의 대표가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사실도 들춰졌다. 문화계의 인력이 막강한 서울이 아니라 몇명 안되는 지방 문화예술계에서도 서울과 다를 바 없는 상습적 성추행이 있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영화와 TV 등에서 인정받는 배우가 지방대학의 강단에 서면서 제자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추악한 이면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단지 명예만을 좇아 그들에게 학생을 맡긴 결과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의 지방도시나 지방대학들은 문화예술 분야가 특히 취약하다. 때문에 서울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중견·원로 예술인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교수나 단체장 등의 개인적 인연이나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융숭한 대접을 해주면서 그들에게 강단도 내주고 예산도 지원하고 있다.

미투를 외친 여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울산이 연일 미투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도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다. 서울의 중견 예술인에 대한 막무가내식 의존이 낳은 결과가 지역예술행정을 휘청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울산시의 지원을 받아 수차례 대표문화상품을 만들어왔던 연극계의 거물 이윤택씨가 미투운동의 핵폭탄이 된데 이어 울산 출신의 시사만화가로서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재동 화백이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재동 화백의 성추행 파문은 하필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사단법인으로 출범하는 날(27일)을 하루 앞둔 26일 터졌다. 그의 후배인 웹툰작가 이모씨는 26일 SBS뉴스를 통해 “2011년 결혼 주례를 부탁하러 갔다가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로 인해 사단법인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출범식이 연기되는 소동이 빚어졌다. 박화백은 첫회부터 이 영화제의 간판얼굴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혼란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문화 행정의 시스템을 바로 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시스템 보다는 연고에 의한 특정 인물 의존성이 낳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력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서울에서 활동하는 유명인을 초빙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공개모집이나 추천제도 등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치단체들은 책임을 통감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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