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대형 재난은 사회문제
안전을 최고로 사회가치가 바뀌어야
행복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장돼

▲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원장

TV에서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지섭 의사를 소개하는 강의를 시청한 적이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에 의분, 의열단원에 가입하고 일제 왕궁에 폭탄을 투척한 후 체포돼 옥중에서도 기개를 굽히지 않다가 끝내 돌아가신 김지섭 의사는 후대에는 지금과 같은 무고한 희생이 없기를 꿈꾸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이 꿈꿨던 현실 속에 사는 후손인 수험생 중 하나가 그분과 관련된 역사문제를 틀려 수능 1등급을 받지 못하자 그 분에게 육두문자를 던졌다. 대한민국 교육은 죽었다”라는 강사의 일갈에 청중은 착찹해 했고, 필자는 가슴이 미어지고 말문이 막혔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좇는 근시안적인 욕심으로 인해 당신의 목숨까지 희생해 가며 지키고자 했던 미래 국가의 안위와 후세의 안녕이라는 가치를 철저히 망각한 어느 한 후손만의 철없는 넋두리일까? 부끄럽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대의적 가치보다는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가치를 대변하는 일대 사건이지는 않을까? 어쩌다 이런 일이….

혹시 이런 문제가 재난관리에 있어서도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복되는 재난의 문제가 단지 한 시설, 한 사람의 문제로 차치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 이어 발생했던 밀양 병원 화재는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안타깝게 한 대형 사고였다. 그런데 이번 화재 사고와 유사한 병원 화재가 불과 4년 전에도 발생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2014년 전남 장성에서 발생한 요양병원 화재가 그것이다.

장성화재와 밀양화재 모두 직접적인 원인은 전기와 관련된 문제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경제적 이익이 안전이라는 공익보다 우선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치 문제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비용절감을 위해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의료진의 수를 줄여 대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지 않았으며, 방화벽이나 비상구가 있어야 할 곳이 영업을 위한 장소로 변경되었다. 비상발전기는 병원시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였고, 그나마 작동하지도 않았다. 그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가슴이 미어지고 말문이 막혔다.

비단 화재와 병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룩한 도시화와 산업화는 그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재난의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쳐온 자연재난 피해까지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가 고도성장을 위해 위험을 감내하고 안전을 제쳐 두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안전을 우선적으로 검토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이룩했던 발전은 더 이상 보장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경제적 부를 희생할지라도 위험을 사전에 봉쇄하는 것, 이것만이 우리 사회가 경제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근대화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회만으로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안전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안전한 사회는 제일의 가치를 안전에 두어야만 가능한 사회이다.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과 수칙을 지키는 사람이 조소의 대상이 되고, 범칙적인 행동이 무용담이 되는 안전 윤리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안전의 가치가 경제의 가치보다 우선할 수 없는 것이다. 안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의 가치가 변해야 하고,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그로 인한 안전으로의 투자도 뒤따라야 한다. 지금이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김지섭 의사와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시대에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대한민국 미래의 안위와 미래 후손의 안녕의 염원은 꿈에 불과할 것이다.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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