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하지왕이 소아주에게 웃으며 말했다.

“소한기, 내 목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군문효수 하시구려. 헌데 소아씨는 사물국의 오래된 명문가로서 그 명성이 자자한데 왜 명을 재촉하십니까?”

“듣기 싫소. 우리 소아씨와 왜의 야마토와는 오래된 친구요. 우리 사이를 쓸데없이 이간질시키려는 자들이 많은데 지금 보다시피 왜가 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렇게 선물과 사절까지 보내지 않았소. 왜는 나를 부요하게 해주는 무역창고요, 무슨 왜의 침공이 있다는 거요?”

“왜의 병근이 간을 파먹고 있는데도 우선 곶감이 달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하오. 언젠가는 내 말이 떠올라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오.”

소아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부하들에게 명했다.

“에잇, 이 작자들은 한결같이 술맛을 떨어뜨리는 자들이다. 하지와 우사를 당장 하옥시키고, 풍악을 세게 울려라.”

“예,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소아주의 사졸들이 하지와 우사를 모추가 먼저 들어간 사물성안 뇌옥에 집어넣었다.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감옥에서 다시 함께 모이게 되었다.

다른 옥방의 죄수들은 눈을 번들거리며 이들을 보다가 다시 감옥의 일상으로 돌아가 토스레옷을 벗어 빈대를 털어내고 이를 잡고 있었다.

하지왕이 우사와 모추에게 말했다.

“당신들의 주군으로서 면목이 없소. 차라리 이 성을 지나쳐 곧바로 와룡산의 명림원지에게 갈 것을, 아둔하고 어리석은 소아주에게 무슨 왜가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전하고 충언을 하려고 한 게 애당초 잘못이었소.”

우사가 말했다.

“가야를 짊어질 군주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기에 제가 간 것입니다.”

“우사선생과 모추에게 미안할 따름이오.”

하지왕은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해봐도 한심했다. 왕좌에 앉은 것은 잠시일 뿐, 가야를 알기 위해 여행길에 나섰다가 왕위를 찬탈당하고 이후, 도적의 산채와 적당의 소굴에서 동가식서가숙하면서 상갓집의 개마냥 전전하며 돌아다니다 결국 가장 밑바닥인 뇌옥까지 굴러 떨어진 것이다. 대업을 이룬다는 구실로 우사와 모추를 거느리고 다니지만 실은 이들 둘도 아무런 힘도 지위도 없는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신뢰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뜻한 바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이 결국 죽음의 나락에 떨어진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소아주는 셋의 목을 베어 박지에게 갖다 바칠 것이다. 셋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하지왕이 탄식을 했다.

“와룡산의 와륵선생을 먼저 찾을 것을.”

그때 옆방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신입들이 들어왔으면 방장에게 신고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말 어원연구

군문효수: 軍門梟首. 죄수의 목을 베어 군영의 문 앞에 매어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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