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동조 비밀전쟁 수행한 몽족
미국 철수 후 보복등 악몽의 나날
지금도 철저한 통제속 비참한 생활

▲ 김훈 경주전통한옥학교장

몽족은 베트남, 중국, 라오스 등지에 살고 있는 묘족이다. 중국에 가장 많이 거주하는 묘족과 같은 민족 집단이지만 중국내에서의 묘족과는 확연히 다른 천대받는 사회적 위치로 산악지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몽족이 이러한 취급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은 북 베트남 정규군, 베트남 민족 해방전선 외에도 라오스의 공산 반군인 파데트 라오군과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군 등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이 관련된 무척 복잡한 양상의 전쟁이었다. 사회주의(중국)와 자본주의(미국)의 거대한 대리 격돌장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CIA와 그린베레는 인도차이나반도 공산화를 막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라오스, 태국, 베트남 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을 무장시켜 해당국의 공산화를 막고, 제일 감당하기 힘들었던 북 베트남의 후방 교란을 목적으로 한 비밀전쟁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때 참가했던 소수 민족 중 가장 많은 활약을 했던 것이 바로 몽족이었다.

몽족은 주로 라오스 중부와 북부 산악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지구력이 좋아 산악작전에 유리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보면 대리 전쟁 수행자로서 몽족은 더할 나위 없는 적합 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몽족의 지도자 방파오 장군을 수장으로 하는 게릴라부대를 1962년 라오스 북부 롱청에 처음 기지를 세우고 활동하게 했다. 롱청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라 할 만큼 오지로 해발 940m 계곡에 위치,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면서 안개에 가려지는 황량한 곳이었지만 CIA의 지원으로 1964년 1260m 길이의 활주로가 완성된다. 미국이 당시 해외에 건설한 최대 규모 시설 중의 하나로 이후 공항, 학교, 은행 등 사회 기반시설이 갖춰진 4만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몽족 최대의 도시로 번성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거대 전쟁 국가 미국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몽족은 당시 어린아이 노인을 포함한 남성의 약 60% 정도가 베트남전에 참가해 북 베트남 후방 지역의 교란과 베트콩의 보급로 차단, 미군 포로 구출 등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몽족들은 미국인 조종사들과 구호요원들을 위한 부대시설 운영이나 라디오 수리, 옷 수선, 구두 수리 등을 하면서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치달은 전쟁으로 인한 미국 내 여론의 악화가 결정적인 요인이 돼 1973년 미국이 철수하자 상황은 그야말로 악몽으로 바뀌게 된다.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에 들어선 공산정권이 그들을 그냥 두었겠는가. 수천명이 보복살해되고, 재교육 수용소에서 사망하고, 일부는 태국으로, 방파오 장군을 비롯한 또 다른 일부는 미국 호주 프랑스 등으로 정치적 망명을 할 수 있었지만 상당수의 몽족들은 라오스 등의 밀림지대에서 수십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부의 추적을 피해 수시로 거처를 옮기며 살거나, 철저하게 감시 통제 받으며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미국은 처음에는 망명한 몽족을 어쩔 수 없는 명분때문에 거두었지만 이후 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한 후 다시 한 번 그들을 버리게 된다. 그것은 2007년 방파오 장군을 비롯한 지도자급을 라오스 정권의 전복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구금하는 사건에서 발현된다. 결국 미국은 그들의 현재 이익을 위해 과거 동지를 헌 신짝 버리듯 한 것이다. 미국이 이러 하니 자유주의 국가라 할 수 있는 태국 역시 똑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된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을 도와 사망한 몽족 6만8000명의 죽음은 미국에게 그저 지나간 과거일 뿐이지만 몽족의 비참한 생활은 현재 진행형이다.

필자는 이러한 몽족의 슬픈 역사를 보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되었다. 첫째, 몽족의 사례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하지 못한 독립은 반드시 불안한 후폭풍을 동반한다. 더구나 인력과 자금 측면에서 자국의 힘을 최소화 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그것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즉 인력면에서는 몽족을 훈련시켜 대리 전쟁인으로 쓰는 것이고, 자금 면에서는 몽족의 헤로인 제조 및 판매를 방조, 협력했기 때문이다. 이런식의 외세에 의한 독립 열망은 결국 태생적인 명분 부족으로 온전한 미래를 꿈 꿀 수 없었다는 것이고. 둘째, 특히 현재 라오스에서 가해지는 몽족에 대한 탄압이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 과하겠지만 라오스 현 정부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들에 대한 정당한 처우 일 수도 있다고 보았을 때 우리 민족 역시 독립 후 일제의 잔재를, 친일파의 잔재를 이들처럼 철저히 걷어냈더라면 아직도 버젓이 눈 뜨고 설치는 매국노들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 셋째, 예전에 짧은 유행가 가사처럼 번지던 말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마라, 일본이 일어 난다”라는 말은 오늘 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우리의 대외 정책으로 결코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김훈 경주전통한옥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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