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뇌옥의 방장에게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차례대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세상과 차단된 뇌옥이라는 어두운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편안함이 있었다. 어떤 것에도 노출되지 않고 어떤 검증도 필요 없는 자기만의 이야기는 거짓과 과장도 섞여 있지만 갇힌 자의 한풀이이자 자존심의 표현이자 존재의 이유이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은밀한 속마음까지 털어놓으며 죄수의 동질감을 공유할 수 있었다. 갇힌 자들에게 이야기는 자기위안이며 지금 살아 있다는 확인이기도 했다.

방장이 셋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 말했다.

“결국 셋은 석공스님의 말을 듣고 와룡산의 와륵선생을 만나러 가다가 이런 변고를 당했네, 그려.”

“그렇소이다.”

셋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천하의 돌중 말에 셋은 완전히 속은 것이군!”

“석공대사가 돌중이라뇨?”

“와룡산에는 와륵선생이 없소이다.”

“옛? 그럴 리가.”

가장 놀란 것은 하지왕이었다.

“그럼, 명림원지라는 와륵선생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자 방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가 바로 당신들이 찾던 와륵선생이오.”

옆에 있는 봉두난발의 죄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방장님의 함자가 명림원지가 맞고, 이 일대에서 와룡산 와륵선생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이오.”

모추가 방장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아니, 당신이 와륵선생이라니, 말이오 말뚝이오? 명림원지는 지금 산자수명한 와룡산 백천에 옥골선풍의 선비로 신선처럼 살고 계신단 말이오. 헌데 와륵선생이 감방의 죄수두목인 당신이라니, 제석항아리에 마신이 들어가도 유분수지 감히 당신이 와륵선생을 사칭하다니 진정 내 손에 맞아죽을 작정이오?”

방장이 좌정한 채로 웃으며 말했다.

“그 땡초 석공이 아마도 나를 과대평가했든지 아니면 당신들을 놀릴 작정이었던 것 같소이다.”

우사도 비아냥거리며 방장에게 말했다.

“석공스님을 돌중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당신이 와륵이라는 것을 스스로 부정하고 부인하고 있는 것이오. 우리가 만난 석공스님은 능히 하지대왕의 왕사로 삼을 만한 견문과 학식, 능력을 갖춘 고승이었소. 헌데 자신을 와륵에 비하면 태양빛에 반딧불이나 다름없다고 낮추며 와륵선생을 우리에게 추천했소. 그러니 정말 당신이 와륵선생이 맞다면 석공스님을 돌중이니 땡초니 하며 폄하하지 않을 것이오.”

 

우리말 어원연구

마신:馬腎. 말의 생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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