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연구팀 “23%는 우울증 증세”…대량학살 목격하며 극심한 스트레스

가축 살처분 참여자 4명 중 3명이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해 ‘가축 살처분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이처럼 드러났다고 4일 밝혔다.

연구소는 가축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과 수의사 277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12월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PTSD를 겪는지를 조사했다. 학계 표준에 따라 22개 문항을 만들어 문항마다 0∼4점으로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그 결과 PTSD 판정 기준인 25점을 넘긴 응답자는 전체의 76%에 달했다. 응답자 전체 평균 점수는 41.47점으로 판정 기준을 훌쩍 넘겼다.

연구소는 “이는 상당히 높은 점수”라면서 “살처분 과정에서의 심리적 충격이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PTSD와 함께 나타나는 대표적인 정신질환인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응답자도 전체의 23.1%나 됐다.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수의사·군인 등 4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심층면접 조사에서는 이들이 겪은 정서적 고통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직접 대량의 가축을 죽여야 하고, 또 이를 몇 달이나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 놓인 살처분 참여자들은 ‘학살’을 했다는 자책감과 ‘위에서 시키니 한 일’이라는 자기합리화 사이를 오가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했다.

수의사로 보이는 한 참여자는 “직업에 대해 자괴감에 빠졌다. 동물들한테 도덕적·윤리적 자책감을 느낀다”면서 “’이것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중인간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다른 수의사는 “(감염되지 않은) 동물을 살려야 한다는 소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지만, 때려죽여서라도 묻어야 하는 학살의 주체가 돼버린다”며 혼란스러워했다.

한 참여자는 살처분 한 뒤 닭장에서 죽은 닭을 꺼낼 때 다리만 빠지는 등 닭의 몸체가 분리되는 끔찍한 장면을 여러 차례 봐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심리치료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연구소는 지적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구제역이 대규모로 확산한 2010∼2011년 겨울 소방방재청을 중심으로 재난심리지원단이 꾸려졌지만, 1회성 사업에 그쳤고 사후 관리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설문조사 응답자 가운데 살처분 뒤 정신적·육체적 건강 검사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3.78%에 불과했다. 

연구소는 “살처분 작업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기 힘든 대량 도살 과정이어서 일반인은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동물의 죽음을 접하는 수의사나 농장주에게도 상당한 심리적 충격을 준다”면서 “살처분 과정에서 정신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한편, 참여자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이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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