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미란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꽤 오랫동안 공부라는 것을 하면서 살아왔는데도 항상 마음 한 구석에는 ‘나는 왜 이렇게 공부가 늘지 않을까’하는 답답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또 다른 한구석에는 이런 마음도 있다. 언제, 어디서든 불필요한 아는 척은 하지 말자, 주절주절 떠들지 말자. 내가 아는 것은 고작 이 세상의 티끌 만큼이고, 그 티끌마저도 다 옳다 할 수 없는 것들이니 말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어떤 얘기라도 주절주절 떠들고 싶은 순간이 있는데, 이를 테면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거나 희망을 보여주고 싶을 때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 우리 사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에 관해 별 의미 없는 말이라도 몇 마디 보태고자 한다.

이에 관해 다양한 쟁점이 있는데, 이제부터 하고자 하는 얘기는 미투를 선언한 이들에게 명예훼손죄를 물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백을 주저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명예훼손죄로 역고소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를 악용해 성폭력 피해를 고백하는 이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이도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비판이나 폐지를 주장하는 분위기도 있다. 형법 제307조제1항에서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즉, 동항만을 놓고 본다면 대외적으로 어떤 사실을 드러내고, 그에 따라 상대방의 명예가 훼손된다면 그것이 거짓이 아닐지라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투를 선언한 이들은 모두 명예훼손죄일까? 그럴 리가 없지 않겠는가. 우리 형법 제310조에서는 “제307조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즉, 미투를 선언한 이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선언한 것이라면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공공의 이익을 위해’라는 문언이 반드시 명확한 것은 아니어서, 사안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있다. 생각건대 미투 운동은 단지 개개인의 피해경험 선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 내의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더 많은 피해자 양산을 저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투 운동을 과연 공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문제는 있다. 위의 형법 제310조를 거증책임 전환 규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는 것이다. 즉, 소송과정에서 드러난 증거만으로는 법원이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을 때 대개는 범죄를 입증하지 못한 검사에게 불리한 판단을 하게 되는데, 예외적으로 형법 제310조의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 형법 제310조는 미투 운동과 관계없이 문언 상 이와 같이 해석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오히려 미투 운동을 계기로 형법 제310조에 대한 해석의 변경을 기대해 본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투를 선언한 이들의 용기가 ‘나’를 포함한 ‘우리’를 위한 것임을, 우리 사회를 위한 것임을 모두가 이해하고, 알아준다면 미투 선언자들이 이런 불이익을 당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미투 선언자들의 증거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배미란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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