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명림원지의 이야기에 하지왕도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명림원지의 이야기가 사실이라 할 지라도 그런 정도의 모략과 무공담 정도로 석공스님이 그를 태양에 비유하며 강태공, 장량, 을파소, 제갈량의 맥을 이을 만한 큰 그릇이라고 말한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명림원지는 자신의 안위와 출세를 위해 자신을 등용한 주군마저 시해하는 이기적인 모사꾼이나 야심 많은 간웅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런 자의 국량이란 대가야의 집사 박지나 비화가야의 건길지, 기껏해야 금관가야의 너구리 이시품왕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업을 이루는 데는 차라리 석공스님이 인품이나 경륜, 역량이 명림원지보다 훨씬 낫지 않는가.’

인물평이 날카로웠던 석공스님이 왜 명림원지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사와 모추도 하지왕과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결국 명림원지는 어릴 때 남보다 좀 명석했고, 외국물을 조금 먹어 판세를 읽는 상황 판단이 빨랐을 뿐, 더불어 대업을 이룰만한 큰 인물은 못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지왕은 예의를 갖춰 명림원지에게 절하며 말했다.

“방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석공스님이 추천한 와룡산의 와륵선생이 분명한 듯합니다. 우리들이 그 동안 간절히 뵙기를 원하던 선생을 뜻밖에도 이 곳 감옥에서 뵙게 되니 큰 광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디 부족한 저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우사와 모추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명림원지가 석공스님이 말한 진짜 그 와륵선생이 맞는지 아닌지를 살피고 있었다.

명림원지가 뜻밖에 하지왕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대왕마마께서 옥중삼배로 부족한 저를 맞아주셨으니 더 이상의 절은 필요 없습니다. 이제 제가 신하된 도리로 큰 절을 올리겠습니다.”

명림원지는 하지왕에게 큰 절을 올린 뒤 돌변한 태도로 공손하게 말했다.

“대왕마마, 지금까지 한 저의 무례한 행동을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 방장님께서 갑자기 무슨 말을 하시는지.”

“저는 하지대왕 마마께서 이 뇌옥으로 들어오실 것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석공스님으로부터 받은 통기도 있었지만 이 난세를 보고도 성을 그냥 지나친다면 제가 모실 영명하신 군주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난 오년 간 이 감옥에서 오로지 하지대왕을 만날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습니다.”

“……”

하지왕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우사가 의아한 듯 말했다.

“방장님, 하지만 바구니안에 든 마른 생선 같은 우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내일 아침이면 우리 셋은 망나니에게 수급이 베어져 대가야의 박지에게로 보내질 것입니다. 이 죽음의 뇌옥에 갇혀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명림원지가 비틀어진 몸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바구니. 【S】vahagoni(바하고니), 【E】bamboo bas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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