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악몽에서 깨어난 하지왕의 몸에는 진땀이 흐르고, 뒷목을 만져보니 찬 소름이 돋았다. 목이 붙어 있긴 했지만 칼자국이 지나간 듯 싸아 한 게 서늘했다. 꿈에서 함께 수급이 베어졌던 우사와 모추는 다행히 양옆에서 발바닥을 드러낸 채 가마니를 덮고 자고 있었다.

깡깡깡.

옥졸이 기상 패종을 두드렸다.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가마니를 걷고 일어났다. 아침 햇살이라곤 한 오라기도 들어오지 않아 옥졸의 패종이 아니면 아침인 줄도 알지 못했다.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을 잔 하지왕과는 달리 우사와 모추는 밤새 잠을 설쳤는지 눈이 퉁퉁 부은 모습이었다. 옥졸이 ‘점호’를 외치자 방마다 번호를 대며 머리 숫자를 확인했다.

하지왕이 꾼 꿈과 너무 흡사했다.

점호가 끝난 뒤 명림원지가 하지왕에게 인사를 했다.

“대왕마마,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덕분에 잘 잤습니다.”

“역시 마마의 간담은 크십니다. 두 분과는 달리 코를 고시며 주무시더이다.”

간밤 꿈이 다시 되풀이되는 듯했다.

하지왕은 마치 백일몽을 꾸듯 명림원지에게 꿈속과 똑같이 말했다.

“인명은 재천인데 걱정한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습니까. 그보다 내가 철이 없어서 그런 게지요.”

“오늘 아침 사형 집행이 있을 것 같습니다.”

“……”

“평소 같으면 점호가 끝남과 동시에 옥졸이 방을 따고 죄수의 발에 차꼬를 채워 노역장으로 끌고 나가느라 부산한데 오늘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지 않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옥졸이 죄수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대역죄인의 사형집행이 있으므로 노역이 없다. 모두 앉아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죄수들이 웅성거리며 모두 하지왕과 우사, 모추를 쳐다보았다.

명림원지가 하지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제가 이곳에서 만든 달력대로라면 오늘 비소식이 있습니다. 옥졸의 어깨 위에 비낱이 묻어 있는 걸 봤습니다. 이번 여름엔 아직 태풍도 장마도 오지 않았는데 오늘부터 바람이 불며 폭우가 시작될 것입니다. 비가 오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습니다.”

“그건 왜입니까?”

“대대로 내려오는 옥중 관습입니다.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베푸는 하늘의 은전이라 믿는 게지요. 실제론 비 때문에 한기와 형리들의 행차가 불편한데다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아 공개처형을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잠시 뒤 옥문이 덜컹 열리더니 빗물에 푹 젖은 도롱이를 입은 형리가 들어왔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형리가 하지왕과 우사, 모추를 보며 근엄하게 말했다.

“대역죄인들은 들어라.”

 

우리말 어원연구

발바닥. 【S】vahirpadak(바히르파다크), 【E】foot. 우리말 ‘발’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는 ‘vahir’(바히르), ‘vala’(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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