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형리가 물걸레처럼 젖은 도롱이를 벗고 말했다.

“사물국 한기님의 명에 의해 오늘 대역죄인 너희 세 사람의 수급을 베기로 했다. 하지만 운 좋게도 폭우가 쏟아져 집행을 연기한다. 다만 이 비가 그치고 날이 개면 지체 없이 사형을 집행할 것이다. 너희들의 운은 그때까지다.”

형리는 옥졸에게 ‘감시를 잘 하라’고 엄명한 뒤 도롱이를 입고 뇌옥 밖으로 나갔다.

하지왕은 뒷목을 쓰다듬으며 명림원지에게 말했다.

“아직 이렇게 목이 붙어 있는 건 명림원지의 덕이오.”

“큰 뜻이 있는 자는 그 뜻을 이룰 때까지 하늘이 결코 죽이지 않는 법입니다.”

우사와 모추도 일단 참수의 위기를 넘겼지만 여전히 명림원지가 와륵선생인지 대해서는 긴가민가 의심했다.

우사가 여전히 볼멘소리로 명림원지에게 말했다.

“날씨 덕분에 잠시 형 집행이 미루어졌을 뿐 지금 우리의 목숨은 가마 솥 안의 고기만 같소이다. 석공스님에게 듣기로 와룡산 와륵선생은 앉아서 천 리를 보며, 기재가 주무왕의 강태공, 한 유방의 장량, 고국천왕의 을파소, 촉한의 제갈량에 견줄 만하다고 했는데 와륵선생을 자처하는 방장님은 도대체 여기를 빠져나갈 묘책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오?”

명림원지가 우사에게 말했다.

“이번 장마는 쉽게 그치지 않을 것이오. 그동안 함께 계책을 마련해봅시다. 역사의 교훈과 나라의 흥망성쇠의 원리를 알고 있는 태사령 우사선생의 지혜와 지식이라면 좋은 생각이 있을 터인데요.”

“역사와 국가의 원리는 긴 시간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도마 위에 올라있는 생선 같은 우리들에겐 지금 당장 칼날을 피할 수 있는 긴급한 술책이 필요할 뿐이오.”

모추가 몰풍스런 말투로 거들었다.

“방장 정도 되면 여기 있는 죄수들을 움직여 옥졸을 죽이고 파옥해 나가는 방법 따위 있지 않겠소. 허긴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오 년 동안이나 여기에 죽치고 앉아 있진 않았겠지만.”

명림원지가 헛헛 풋웃음을 웃으며 농처럼 말허두를 돌렸다.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러 일으켰듯 오늘 제가 폭우를 불러온 것으로 부족하오? 비가 내리는 동안 재미있는 옥중방담이나 나눠 봅시다.”

모추가 발끈했다.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무슨 한가한 이야기를 한단 말이오?”

“옥중의 방담이란 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재미있고, 비현실적인 괴란쩍은 얘기들뿐이지요. 먼저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하지대왕께 여쭙겠습니다. 마마께서 여길 나가시면 무얼 하실 작정이십니까?”

하지대왕이 정중하게 말했다.

“먼저 박지에게 빼앗긴 대가야를 찾겠습니다.”

“그럼, 대가야를 찾은 뒤에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말 어원연구
죽이다. 【S】jiyughida(지유기다), 【E】kill. 참고로 산스크리트어 ‘jiyu’는 ‘to be overpowered’, 즉 ‘제압되다’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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