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가야일통의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

“가야일통의 대업을 이룬 뒤에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명림원지는 집요하게 하지왕에게 질문을 계속했다.

“글세, 그 이후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로부터 가야를 지켜내고 가야를 부국강병한 나라로 만들면 좋지 않겠습니까?”

“마마, 훌륭하시지만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럼,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명림원지는 쥐눈처럼 반짝이는 눈을 잠시 감았다.

옥중 밖에는 폭우가 가늘어져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와룡산은 짙은 구름에 잠겨 있고 사물성은 무거운 안개에 젖어 있을 것이다. 밤사이에 비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샐녘에 해가 난다면 그날로 하지왕 일행은 처형될 것이다.

명림원지가 옥졸과 형리, 죄수를 통해 밖으로 전한 전갈은 무사히 도착해 실행에 옮겨지고 있었다. 명림원지는 그것을 오늘 아침 들어온 형리와의 은밀한 수화를 통해 확인했다. 어두운 옥중에서 오 년이란 긴 세월을 두고 지혜와 정력을 기울여 빚어낸 모사가 이제야 한줄기 빛으로 허공을 헤쳐 하늘에 닿는 환영을 보고 무량한 감개에 젖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이 비가 그치지 않고 닷새만 더 내려준다면….

명림원지는 감았던 눈을 뜨며 하지왕에게 말했다.

“대왕마마, 제 소견에는 가야일통은 대업이 아니라 소업입니다. 가야일통 이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통일하는 사국일통을 이루어야 합니다.”

“나에게 그런 대업이 가당키나 하겠소?”

“그것도 대업이 아니라 중업에 불과합니다.”

모추가 명림원지의 말을 듣다듣다 화를 참지 못하고 대화 중에 끼어들었다.

“방장, 마마께서 방장의 말을 선선하게 들어주시니 갈수록 가관이구려. 무간 뇌옥에서 할 일 없이 앉아 있으면서 과대망상만 늘었는가보구려. 대가야를 찾는 것도 어렵거늘 사국일통이 중업에 불과하다니 그 무슨 개뿔 같은 소리요? 대업은 또 어떤 허풍으로 발괄하실지 궁금하오?”

명림원지는 모추의 말에 기분이 상한 듯 한 마디 했다.

“젊고 잘생긴 미남 장군이 입이 거칠기가 무쇠 톱날 같구려. 군주는 신하와 백성들과 함께 국가의 대강을 공유한 뒤에야 분명한 영을 세워 국가를 이끌 수가 있소이다. 하지대왕께서 이룰 대업이란 왜와 중국을 복속시켜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 진정한 대업입니다.”

명림원지의 말에 하지왕은 침묵으로 답했고, 모추는 기가 찬 듯 콧방귀를 꼈으며, 우사는 헛웃음을 웃으며 자조하듯 말했다.

“허허, 우린 사형수로서 한갓 추적거리는 비에 의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마당에 그대는 마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라도 된 듯한 기개이시군요. 말로야 중국의 삼황오제를 내 수하에 두고 세 마리 말을 모는 말몰이꾼과 다섯 수레를 끄는 구종으로 삼지 못하겠습니까. 실현이 불가능한 말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요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입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듣다. 【S】drida(드리다), 【E】listen. 불교에서는 ‘drida’(듣다)를 ‘darsana’(보다, see)로 의역 해 우리 전통어의 뿌리를 혼란케 했다. -강상원, ‘왕손정통언어복원 실담어주석’, P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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