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개인마다 다른 다양한 성욕구와 행동
사회의 규칙에 따라야 문제가 안돼
성평등의식이 빠르게 높아지는 동안
권력의 횡포를 묵인하는 관행은 여전
괴물 생겨나는 토양…미투운동 확산
성폭력은 엄벌해야지만 맥락도 살펴야
억울한 피해자로 미투운동 발목 잡힐라

성폭행 피해자들의 연이은 고발로 드러난 유명인들의 성적 일탈이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게 똑똑하고 대단하던 사람이 왜 그런 어리석고 부끄러운 행동을 했을까? 권력자의 갑질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의 성과 관련된 행동, 즉 성 행동이란 대체 어디까지 정상일까?

단순해보이지만 성 행동은 엄청 복잡하고 다양하다. 요즘은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등 법적 처벌이 주된 이슈지만 윤리적 지탄의 영역, 의학적 치료의 영역으로도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영역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문화에 따라서 변하기도 한다.

동성애는 오랫동안 종교적 죄악이었고 법적 처벌의 대상이었다.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2차 세계대전 때 암호를 해독하여 영국을 구해냈으나 동성애로 기소되어 화학적 거세 판결을 받은 뒤 자살하였다. 의학적으로는 1973년부터 미국의 정신질환 분류에서 제외되었고, 2000년대부터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여러 나라에서 동성 간 결혼이 합법화되고 있다.

변태 성욕, 즉 성도착증은 성적 흥분을 위하여 비정상적인 상상·대상·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 종류가 엄청 많지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명 바바리맨으로 알려진 노출증은 낯선 사람에게 성기를 드러내고는 상대의 깜짝 놀라는 반응에 성적 쾌감을 느낀다. 관음증은 벗은 몸을 훔쳐보고, 접촉성도착증은 혼잡한 장소에서 성기를 접촉함으로써 성적 흥분을 느낀다. 간혹 판사나 의사도 이런 행위를 저지르곤 한다. 이런 행동이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기이하고 황당해 보이지만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은 심각하다.

30대 청년이 공공장소에서 주요 부위를 노출하여 신고 된 뒤 진료실을 방문하였다. 법적 처벌 수위는 높지 않았지만 그는 직장을 잃었고 얼굴을 들고 지낼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몹쓸 충동을 어떻게든 잠재워달라고 필사적으로 하소연하였다. 졸리거나 둔해지더라도 약물의 부작용은 얼마든지 견디겠다며 약물의 증량을 요구하였다. 그는 자신의 미래가 성적 충동 억제에 달려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성도착증은 2013년 정신장애 진단분류 개정에서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성도착장애로 그 명칭이 변하였고, 각각의 질환도 노출장애, 관음장애처럼 ‘장애’가 추가되었다. 이는 일반인에게 흔히 있는 특이한 성적 취향만으로는 장애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즉, 관음증이 있더라도 그 취향이 자신에게 고통스럽거나 그 행동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심각해야 장애로 진단한다.

성적 욕구도 개인차가 크다. 성적 욕구가 지나쳐 반복적으로 법적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성적 행동을 멈추기 어려운 사람을 성중독이라고 한다. 타이거 우즈도 성추문이 불거진 뒤 성중독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중독과 과잉성욕장애는 2010년에 공식 진단명으로 등재 요청되었으나, 성욕의 정상 범위를 판단하기 어렵고 법적 상황에서 잘못 사용될 우려가 있어서 기각되었다.

불륜은 더욱 복잡하다. 간통죄는 2015년에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다. 불륜은 정신의학적으로 비정상이라 할 수는 없으나 불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한다.

남편의 불륜에 충격을 받은 중년 부인이 식음을 전폐하다가 진료실을 찾았다. 평소 직장과 가정에 충실하고 자상한 남편이었기에 상실감은 더 컸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 남편이 용서를 구하고 있지만 쉽게 마음을 열 수 없다. 남은 평생 차가운 마음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부인은 남편을 이해해보려 애쓰면서 길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도대체 인간의 성 충동과 욕망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성 행동의 복잡성과 미묘함 때문에 문학의 주제는 풍부해졌고, 남녀 관계에서는 마음읽기 능력이 중요해졌다. 반면에 명확한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접근하여 피해를 주는 문제도 발생하였다. 개인의 성적 욕구와 행동이 다양하더라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

문제는 규칙의 변화가 사회 각계에 고르게 정착되지 못한 것이다. 성평등 의식이 빠르게 높아지는 동안에도 권력의 횡포를 묵인하는 관행은 사회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는 괴물이 생겨나는 토양이 된다. 미투 운동은 충격적인 방식으로 이런 현실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복잡한 문제를 강력한 힘으로 변화시키려다보면 때로 놓치는 부분도 생긴다. 물론 성폭력은 엄중히 처벌해야겠지만 사안마다 잘못의 경중을 구분하고 사건의 맥락도 살펴야 한다. 자칫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억울한 상황을 겪게 되면 미투 운동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미투 운동은 약자와 여성을 보호하는 데서 나아가 삶의 방식도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배우자 외의 이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펜스룰은 사실 찬반으로 대립할 문제가 아니다.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그러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직장 내 소통방식도 음주문화도 성희롱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달라질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본 칼럼의 임상 사례는 당사자를 확인할 수 없도록 편집하였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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