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그나마 명림원지와 하지왕 일행이 서로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각방에 떨어져 있었기 망정이지 한방에 있었더라면 모추와 우사가 명림원지를 한 방 칠 기세였다. 그만큼 명림원지의 말이 종작없어 보였다. 지금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고 대가야 회복이 절체절명의 과제인데 그것은 안중에 없고 22가야 통일을 소업이라하고 사국일통을 중업이라 떠들고 있으니 입이라도 한 방 쥐어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왕은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이며 차분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와륵선생이 말하는 대업은 무엇이란 말이오?”

“진정한 대업은 일본과 중국을 통일하는 천하통일입니다.”

우사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나가도 너무 한참 나가버린 것이다.

모추는 명림원지를 칠 듯이 쇠깍지 같은 팔뚝으로 목창살을 쾅쾅 내리치며 말했다.

“명림선생, 천하통일이라니 그게 말이오 말뚝이오? 빌어먹을 대업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이 창살이나 부수고 파옥하는 길이나 말해보시오.”

옥중 좌평인 수수보리가 분을 못 참는 모추에게 경고했다.

“여기선 한갓 문방인 주제에 방장님에게 대들지 마시오. 함부로 방장님께 험한 행투를 하고 독한 혀를 놀리면 나 좌평이 징벌을 내리겠소.”

하지왕도 모추에게 엄하게 말했다.

“모추, 내가 명하겠네. 궁정에 가면 궁정의 법을 따르고, 뇌옥에선 뇌옥의 법을 따라야 하네. 우리를 보는 많은 눈들이 있으니 자중자애하시오.”

사물성 뇌옥은 와룡산이 굽이굽이 흘러내린 북편 산자락에 토굴을 파고 목창살을 질러 놓은 곳이었다. 어둡고 우중충한 뇌옥에는 비 때문에 노역을 나가지 못한 삼십여 명의 죄수들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신입인 하지왕과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천하를 호령하던 왕이라도 일단 뇌옥에 들어오면 개털이 되어 선배 죄수들에게 고개를 수그리고 국으로 처박혀 있어야 하는 것이 뇌옥의 법이다. 죄수들은 신입인 세 사람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마마.”

모추는 하지왕의 말 한 마디에 꼬리를 내렸다.

하지왕이 명림원지에게 말했다.

“와륵선생, 소업, 중업, 대업을 아퀴지어 말씀하셨으니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업과 중업과 대업, 세 가지는 가야의 문양 오동잎과 같아 각각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줄기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소업을 이루고 중업을 달한 뒤 대업으로 나아가는 순차적이 과업이 아니라 세 업을 한꺼번에 도모해야 합니다.”

“과연, 그렇군요.”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자가 딱 한 명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방법을 원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말 어원연구

치다. 【S】chida(치다), 【E】at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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