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편 (35)울산청년회의소와 박상진 의사 동상

▲ 1982년 울산JC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태화강변에 세워졌던 박상진 의사 동상은 1998년 북정공원으로 이전된 후 지금은 시립미술관 건립에 밀려 울산 중구청 창고에 임시 보관돼 있다. 사진은 지난 2011년 북정공원에서 촬영한 박상진의사 동상.

2천여만원 상당 건립비용 모금운동
나머지는 15대 김영균 회장이 부담
1982년 8월15일 태화강변 JC공원에
이후 태화강에 강변도로 생기면서
1998년 중구 북정공원으로 이전 후
시립미술관 공사로 중구청에 보관
미술관 완공후 북정동 우체국 자리에
독립운동공원 조성해 이전 계획

울산시는 옛 울산초등학교에 미술관 건립하면서 북정공원에 있던 고헌 박상진 의사 동상을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

고헌 동상은 지금부터 36년 전인 1982년 제작돼 세워졌다. 그런데 이 동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울산 유지들과 울산청년회의소(JC) 회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조선조 말 울산군 송정동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났던 고헌은 평생 항일운동을 벌이다가 38세에 순국했다. 그러나 해방 직후만 해도 울산 사람들 중 고헌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고헌의 항일운동이 울산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은 자유당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던 창량 장택상이 고의적으로 고헌의 항일 행적을 숨겼기 때문이다.

고헌과 창량 집안은 악연을 갖고 있다. 고헌이 대한광복회 총사령으로 있을 때 국내 부호들을 상대로 군자금 모금에 나선 적이 있다. 그런데 일부 친일부호들이 식민지 체제에 안주하면서 항일운동에 필요한 군자금 모금을 거절하자 이들을 처단했다. 이 과정에서 고헌 부하들이 1917년 친일파로 칠곡의 부호였던 장승원을 처단했는데 장승원이 바로 창량의 부친이었다. 이 때문에 해방이 되었지만 창량의 방해로 고헌의 애국적인 행동이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창량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시절 고헌의 행적을 울산시민들에게 알린 사람이 박순천과 곽상훈 국회의원이었다.

이들은 기장과 부산이 고향으로 자유당 시절 2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추전 김홍조의 아들 김택천 집을 자주 방문해 고헌의 항일운동 얘기를 김 의원에게 들려주었다. 일제강점기 박 의원과 곽 의원은 항일운동을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고헌을 잘 알고 존경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김택천 의원을 중심으로 울산 유지들이 ‘박상진의사 추모회’를 만들게 되고 이 모임에는 박용진 이병직 최두출 김성태 유승렬 등 울산유지들이 참여했다

박용진은 고헌 선생의 6촌 동생이고 이병직과 최두출은 울산을 대표하는 교육자였다. 김성태는 고향이 밀양이지만 박용진과 특별한 인연으로 추모회 회원이 되었다. 박씨는 해방 후 딸 수남이 심장이 좋지 않아 딸과 함께 밀양에서 치료를 받고 요양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박씨는 밀양 내일동에 있었던 김씨 집에서 기거했다. 수남은 박종해 전 울산예총회장 누나로 올해 91살로 아직 살아 있다.

박용진씨는 밀양에 살 때 김성태씨에게 형 고헌에 대한 얘기를 자주 했다. 그런데 나중에 김씨가 밀양 읍장을 지낸 후 목재업을 하다가 실패해 가정경제가 어렵게 되었다. 이러자 박씨가 김씨를 울산으로 불러 그에게 수산협동조합에서 근무토록 해 김씨가 전 가족을 데리고 울산으로 왔다.

‘박상진의사 추모회’ 회원들은 고헌의 행적을 울산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1960년 시민들이 많이 드나드는 학성공원에 고헌 추모비를 세웠다.

고헌의 일대기가 새겨진 이 비는 박용진이 초를 했고 당시 성균관대학교 1학년이었던 박씨의 아들 종해가 한문형식으로 된 글을 한글로 옮겨 새겼다.

건립 60여년이 가까운 이 추모비는 지금도 학성공원에 그대로 있다. 비 전면에는 ‘대한광복회 총사령박상진의사추모비’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박상진의사 추모사업 울산군 위원회’가 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울산사회에 고헌의 행적이 알려지자 당시 울산MBC는 고헌 일대기를 취재해 울산시민들에게 알렸다. 70년대 말 고헌 선생의 일대기를 취재하기 위해 박동훈 보도부장과 함께 유승렬을 찾아갔던 최영수씨의 회고담이다.

“당시 유씨는 옥교동 현 유미빌딩이 자리한 일본 가옥에서 살고 있었는데 인터뷰를 하는 동안 고헌의 항일운동에 대해 얼마나 말씀을 잘 하는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내 스스로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유씨는 일제강점기 미시다니(西谷)사진관 조수로 있으면서 사진 기술을 익혔는데 해방 후 미시다니가 일본으로 가면서 물려준 집에 사진관을 차려 놓고 후학을 양성하고 울산사진 보급을 위해 힘썼다.

고헌의 동상이 울산에 세워진 것은 1982년이다. 이해 김성태의 아들 영균이 제15대 울산청년회의소 회장이 되었다.

그러자 김씨를 비롯한 박상진의사 추모회 회원들과 울산JC 회원들이 합심해 고헌 동상을 세우도록 건의했다. 울산 JC회원들이 동상을 세울 때 가장 힘들었던 일이 동상에 소요되는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동상은 청동으로 세우기로 했는데 건립비용이 2000여만원이나 되었다. 이 돈을 JC회원들이 모두 부담하기에는 너무 많은 액수라 울산 유지들을 상대로 모금운동에 나섰다. 이때 도와준 사람이 이순동 울산시장과 김기수 울산상의 회장 그리고 마산 무학주조 최위승 회장이었다.

모금을 했지만 돈이 턱없이 부족하자 김 회장이 나머지 돈을 모두 부담했다. 돈이 모자라다보니 고생을 한 사람이 많았다. 이 사업에는 특히 김 회장의 부인 김순자(75) 여사가 고생을 많이 했다. 동상 제작은 경주고등학교 이동호 미술선생이 맡았다. 이동호 선생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출신으로 당시 경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글은 양명학 울산대 교수가 지었고 글씨는 울산MBC 김경욱씨가 맡았다. 제막 날짜는 광복절에 맞추어 1982년 8월15일로 정했다. 동상은 당시 중구 태화강변에 있었던 JC 동산에 세우기로 했다.

당초 기단은 큰 자연석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돈이 부족하다보니 자연석을 구입할 형편이 못되어 기단 안에는 블록을 넣고 밖에만 자연석을 붙이기로 했다.

이 일은 인부들이 했다. 인부들의 임금은 책정했지만 식사비가 없어 점심 식사는 공사기간도 줄일 겸 매일 김 회장 부인 김순자(75) 여사가 집에서 밥을 해 소쿠리에 이고 날랐다. 당시 김 여사는 옥교동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때면 자신의 식당 일은 남에게 맡겨 놓고 무더운 여름 두 달 동안 밥이 담긴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밥을 해 날랐다.

기단 공사에는 따로 감독을 둘 수 없어 당시 울산JC 간사였던 김수건씨가 매일 JC동산에 출근하다시피 나와 공사의 진척과정을 지켜보았다.

동상 제작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동상은 박 의사가 태화강을 보고 있는 모양세로 세웠다. 그리고 박 의사의 용맹이 살아날 수 있도록 오른 팔은 하늘을 향해 굳건히 올려 세우도록 했다. 이렇게 하다보니 강남에서 울산교를 건너오는 사람들은 박 의사의 얼굴이 팔에 가려 박 의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팔을 올려야 하느냐 내려야 하느냐를 놓고도 논란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태화강의 남북을 연결하는 다리가 많지 않아 울산교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막식은 당초 동상이 세워져 있는 JC동산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제막식 날 비가 많이 내려 인근 코리아나호텔에서 했다. 제막식에는 박 의사 문중인 송정 박씨 어른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이 모임에 특별히 초청된 인물이 전두환 대통령의 큰 아버지 전상희였다. 전씨는 당시 합천에 살고 있었는데 전국을 대표하는 유림의 한 명으로 특히 서체가 뛰어났다. 전씨는 이날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예정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제막식 며칠 뒤에 와 울산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돌아갔다. 전씨는 울산에 있는 동안 성남동 신한호텔에서 머물렀는데 뒷바라지를 김 회장이 모두 했다. 전씨가 머무는 동안 신한호텔에는 그의 글을 받으려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김 회장을 비롯한 이수만 전 울산시의회 부회장과 신기찰 전 도의원이 전씨로부터 글을 받아 지금도 가보로 보관하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과정을 통해 세워진 동상은 동상이 세워진 태화강둑에 강변도로가 생겨나면서 1998년 북정공원으로 이전 다시 이곳에 세워졌다가 미술관 건립을 앞두고 지금은 중구청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울산시는 미술관이 건립되면 현 북정동 우체국 자리에 독립운동 공원을 조성해 이곳에 다시 동상을 세울 계획을 잡고 있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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