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명림원지는 작고 둥글며 마치 어둠속의 작은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쥐눈을 말동거리며 말했다.

“한무제 유철은 진시황제 다음으로 중국인들이 존경해 진황한무라고 부르긴 하지만 대업을 이룬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한고조가 초패왕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통일한 다음이라 약간의 변방 영토를 확장한 정복군주에 불과합니다. 유철이 무제라 불리는 이유는 북방의 강대국 흉노의 일부를 물리친 업적 때문이지요. 한나라는 건국 초부터 만리장성 너머 북방에는 있는 흉노의 신국이 되어 매년 거액의 조공과 황실의 공녀를 바치고 조알을 하면서 선우의 비위를 맞춰왔지요. 하지만 유철이 천자의 위엄을 개똥으로 바르고 있는 서북방 흉노족에 위청과 곽거병을 보내 고전 끝에 정벌해 겨우 신국을 면한 것입니다. 하지대왕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가야와 신라의 김씨의 시조는 그때 수도 장안으로 온 흉노 왕자 김일제의 후손들입니다.”

하지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대가야의 태조 이진아시왕과 금관가야의 태조 김수로왕이 투후 김일제의 7대손이라는 걸 태사령 우사선생이 편찬한 가야서기를 보고 알았습니다. 따라서 나도 투후 김일제의 직계 후손입니다.”

엄격한 실증 사학자인 태사령 우사도 명림원지와 하지왕의 말에 동의했다.

“가락국기나 고기, 향전들을 보면 건국의 시조들은 한결같이 알에서 나오거나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의 아들이라 적혀 있지만 신라 김씨왕조의 시조 김알지왕과 가야 김수로왕, 뇌질주일(김주일)왕은 투후 김일제의 후손으로 십촌 형제간이지요. 역사에서 신비하게 꾸며낸 신화와 전설, 설화의 껍질을 벗겨내고, 승자가 화려하게 미화한 거품을 한 꺼풀 더 걷어내야 비로소 거짓 없는 인간의 알몸이 드러나지요.”

이러한 태사령 우사의 실증적 역사관은 금관가야에서 추방되는 계기가 되었고 대가야 집사 박지가 태사령 우사를 가야의 역적으로 잡아들이는 빌미가 되었다.

명림원지가 우사에게 말했다.

“우사선생, 역사가 치장을 벗고 사실만 드러나게 되면 깡마른 여인의 알몸처럼 볼품없고 수치스럽지 않을까요? 사관이 판단해서 입힌 선악, 미추, 진허의 옷마저 벗어버리면 토막토막 뼈다귀와 뼈다귀로 간신히 연결된 역사는 사실은 될지언정 기품 있는 진실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옥중 방담을 나누는데 옥문 입구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배식!”

명림원지와 우사가 한무제를 얘기하다 사관에 대해 논쟁을 벌이던 이야기는 옥졸의 ‘배식’ 소리에 중단되었다. 하루 두 끼 시작 중 아침을 먹을 시간이 된 것이다. 옥졸이 열쇠로 맞은 편 옥방 문을 열자 배식당번인 텁석부리 모개와 곰보인 고두쇠가 나와 밥수레를 밀고 오면서 배식을 했다. 밥이랄 것도 없었다. 소금 간을 한 수수밥을 한 덩이씩 나눠주고 물 한 그릇이 끝이었다.

 

우리말 어원연구

어둡다. 【S】aduhaka(아두하카), 【E】gloomy, not hopful, darkish. 어둡다는 ‘아득하다’와 같은 어원. 원뜻은 ‘우울한’ ‘희망이 없는’이란 심리적인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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