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울산암각화박물관장·고고학 박사

암각화(岩刻畵 petroglyphs)는 바위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 물감으로 그린 암채화(岩彩畵 pictographs)와 함께 바위그림(岩畵 rock art)이라고 한다. 선사학에서는 문자가 없던 시대 모든 이미지를 선사미술(先史美術 prehistoric art)이라고 한다. 여기서 이미지는 인간이 미술에 대해 말하기 전에 창조한 시각적 표현물로 엄밀한 의미에서 미술과는 다르다.

생전에 반구대암각화의 탁월함에 감탄했던 알랭 떼스타(Alain Testart, 1945~2013년) 교수가 선사미술에 대해 들려준 일화가 있다.

1960년대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는 ‘Please, Not Now’라는 영화 한편으로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평론가들은 보잘 것 없는 작품이라 혹평했지만, 포스터가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도톰한 입술과 요염한 자태의 그녀를 실물보다 더 크게 인쇄한 포스터는 프랑스 외진 시골까지 나붙었다. 너나없이 포스터 앞에 모여들어 그녀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프로크루스테스와 싸우는 테세우스, 대영박물관, 440-430 BC(Marie-Lan Nguyen/ Wikimedia Commons)

만약 화성에서 온 고고학자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20세기 지구인들의 여신숭배 의식이라고 결론지을 것이다. 어쩌면 화성 페미니스트들은 지구여성들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알랭 떼스타는 이미지는 눈으로 보고 맥락으로 읽혀진다고 했다. 그래서 작가나 제작배경을 알 수 없는 선사시대 이미지에서 아름다움이나 미적 즐거움 같은 미술개념은 프로크루스테스 침대(procrustes bed)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크루스테스는 자기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침대보다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자르고 작으면 사지를 늘여서 죽였던 악당으로 테세우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머리가 잘려 죽었다.

이상목 울산암각화박물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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