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에 방관자적 태도 자성하며
사회 구조적 문제를 과감히 해결하는
사회적 도덕심 운동으로 발전시켰으면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미투(Me too)운동’과 이를 지지하고 연대한다는 의미의 ‘위드유(#WithYou·당신과 함께 하겠다)운동’의 확산을 바라보면서 문득 ‘방관자 효과(구경꾼 효과)’란 말을 떠올리고는 나도 방관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유없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방관자 효과’란 누군가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돼 도와주기를 주저하게 된다는 것으로 1964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키티 제노비스’ 살해사건에서 유래된 말이다. 어느 날 새벽 퀸스지역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이름의 여성이 강도에게 살해되었는데 35분간이나 계속된 살인 현장을 자기 집 창가에서 지켜본 사람은 모두 38명이 있었으나 그 어느 누구도 제노비스를 도와주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데이얀 엉 감독은 2001년에 제작한 단편 영화 ‘버스 44’를 통해 방관자들의 비겁함을 냉소적인 시각으로 비판하며 방관적 사회의 한 단면을 냉철하게 꼬집은 바 있다. 과연 나는 방관자가 아닌지 한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정부에서는 미투 대책의 일환으로 형법 개정을 통한 권력형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피해 사실을 공개할 수 있도록 ‘미투 폭로’에는 ‘위법성 조각(阻却) 사유’를 적극 적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범죄 예방을 위한 처벌의 강화는 단연 필요한 대책이지만 ‘미투’를 단순히 사법 처벌의 문제로만 보고 대책을 세우는 것은 아무래도 미흡한 면이 있다고 본다. 성폭력·성희롱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과감히 고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이참에 이 사회의 몰지각성을 모조리 뿌리 뽑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젠더(gender)적 관점’이 아닌 모든 면에서 ‘사회적 도덕심’을 키우는 운동이 함께 전개되어야 함을 조심스럽게 제언해 본다.

‘미투 운동’을 성적인 피해 측면에서 ‘나도 당했다’는 일부의 해석이 아닌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나의 잘못된 행동에서 비롯된 상대적 피해’에 대해 ‘내가 잘못해온 점을 스스로 인정 한다’는 의미의 ‘자발적 미투’를 통해 반성을 하는 동시에 ‘앞으로는 절대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선언을 함께 공유하는 ‘다짐적 미투’ 운동으로 확대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러한 ‘미투’는 고발이 아닌 반성이자 각오를 새로이 하는 다짐이기에 굳이 언론이나 주변에 ‘공개적 자수’를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미투 운동’을 방관자적 입장에서 지켜보기만 해온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미투 운동’에 대한 조용한 동참 방법은 나도 모르게 저질러온 ‘갑질’이나 잘못된 관행적 행동, 그리고 주변에 피해나 부담을 준 모든 행동에 대한 ‘용감한 반성’과 ‘새로운 다짐’일 것이다. 법질서 위반이나 공중도덕은 물론 주변에 상처를 준 말 한마디 까지 포함한다는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평소 업무 특성에 따라 서로 입장이 다를 수도 있는 다양한 계층의 직장 내 여러 식구들과의 ‘소통만남’을 이어오면서 관심과 배려, 이해와 양보, 인권의 존중과 공정한 대우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행동에 앞서 스스로를 경계하는 ‘내 마음의 미투’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은 다행이라기보다는 감사한 일이다.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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