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 부작용도 있지만 멈춰선 안돼
가해자에 대한 강력 규제로 의식 바꿔
남녀가 더불어사는 건강한 세상 조성을

▲ 정명숙 논설위원실 실장

1994년 어느 가을날. 원로화가가 운영하던 화실의 복도에 있는 남녀공용의 화장실 겸 세면장에서 나는 커피잔을 씻고 있었다. 20대 초반쯤 돼 보이는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입시학원과 사무실 등이 있는 복합건물이기에 예사로 생각했다. 그는 5~6칸 되는 화장실이 몽땅 비어 있었으나 들어가지 않고 세면대를 쳐다보고 있었다. 손을 씻으려나 싶어 먼저 사용하라며 비켜서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덮쳐왔다. 고함을 지르며 문 쪽으로 뛰쳐나오려다 쓰레기통을 넘어뜨리고 법석을 떨었다. 화실에서 그 소리를 들은 선생님이 호통을 치며 달려오자 그 남자는 줄행랑을 쳤다.

다시는 그 건물에 갈 수가 없었다. 3년 넘게 배우던 그림을 그만 둔 것은 물론 세상 남자가 모두 무서워졌다. 졸지에 모든 남자가 잠재적 성범죄자로 다가왔다. 혼자 거리를 걸을 땐 남자가 지나가면 온몸이 절로 굳어 꼼짝도 못하고 서 있기도 했다. 밤엔 혼자서 택시를 탈 수도 없었다. 한참의 세월이 흐르면서 후유증은 점차 사라졌으나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은 지금도 어렵지 않다. 말갛고 곱게 생겨서 더 충격적이었던 그 남자의 모습은 아직도 뚜렷하다. 순간적으로 이상했던 눈초리도, 출입문 옆에 있던 그 남자와 세면대 앞에 있던 나 사이의 거리도, 놀라서 도망치다가 넘어뜨린 커다란 파란색 플라스틱 쓰레기통도, 그날 입었던 갈색 원피스도, 화실 선생님의 천둥 같은 목소리도, 도망치던 그 남자의 다급한 발소리도.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운동’이 두 달 가까이 됐다. 남녀를 떠나 공감대가 많이 확산됐다. 성추행이 여자에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를 새삼 설명할 단계는 분명 지났음에도 구구절절 경험담을 늘어놓은 것은 한 법조인 때문이다. 그는 “7년 전 일을 막 나눴던 대화처럼 장소와 시간별로 기억하는 천재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24년여전에 있었던, 다시는 만날 가능성이 없는 낯선 사람에 의한 충동적 성추행과 그 후유증도 이렇게 어제 일처럼 세세하게 기억나는데 아는 사람, 그것도 함께 일을 해야만 하는 윗사람에 의한 성범죄가 평생을 두고 잊힐 리가 있겠는가. 잊히기는커녕 수시로 몸서리가 쳐질 일이다.

세상은 지금 미투운동 해석에 한창이다. ‘권력형 성범죄’라느니, ‘미투운동의 본질은 성이 아니라 권력’이라느니, 제법 그럴 듯해 보이는 해석도 있으나 어느 하나 온전치는 않다. ‘인간이하의 저급하고 잔인한 폭력’일 뿐인 성범죄가 가진 근본적인 죄악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정의를 하자면 ‘단지 동물적으로 강자인 남자가 육체적·관습적으로 약자가 된 여자에게 가한 매우 비인격적이고 몰염치한 폭력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음을 드러낸 약자들의 혁명’이다. 다만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나쁜 범죄를 저지른 그들이 마침 권력을 가진 남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여파가 커지면서 부작용도 없진 않다. 지겹기도, 불편하기도 하다. 비교육적인 부분도 있다. 가해자의 자살이란 심각한 문제도 발생했다. 허위미투 논란도 나타났다. 피해자의 2차 피해는 물론이고 가해자 가족들의 고통도 걱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쯤에서 끝내자고 해서는 안 된다. 남녀가 더불어 사는 건강한 세상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분명한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해석에 비해 해법 제시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남성들 스스로 강간문화를 반성해야 한다거나 어릴 때부터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 고작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반성도 하고 교육도 하되 그에 앞서 신속하게 처벌하고 엄중한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88.6%가 미투운동을 지지하고, 핵심적 해결방안으로는 가장 많은 36.5%가 가해자 징계와 처벌강화를 꼽았다는 여론조사(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결과도 있다. 강력한 규제로 의식을 바꾸고, 그래서 시대(時代)를 바꾸어야 한다.

정명숙 논설위원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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