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교무실 짝지의 컴퓨터 바탕화면은 그만의 인생 샷이다. 살면서 찍은 사진 중에 최고로 꼽을 만큼 잘 나온 사진을 의미한다. 지난 겨울 남동생이 사는 하와이 여행 도중 ‘필 박스’라는 곳에서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벙커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한가로운 바다와 잔잔한 파도가 만들어낸 부드럽고 뽀얀 포말, 마침 하얗게 피어난 뭉게구름, 그 한켠 높은 벙커 위에 앉아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담아내는 그의 한가로운 뒷모습. 그 곳에서 즐긴 정취가 그대로 묻어나 볼 때마다 청량감이 느껴진다. 그의 인생 샷이 나를 꿈꾸게만 하는 것 같다. 내겐 영화 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로만 알고 있는 그 곳의 풍경과 정취, 여유를 꿈꾸게 한다.

내게 이런 그의 인생 샷 사진만큼이나 청량감을 주고 꿈꾸게 한 것이 있다. 바로 독서다. 책을 읽으면 토끼전에서 토끼가 간을 꺼내 깨끗한 물에 씻고 말렸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의 뇌를 그렇게 한 것처럼 느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인생의 여러 험난한 도전에서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고 임할 수 있게 용기도 주었다. 엄청난 좌절 앞에서 나를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고 심지어 나조차도 이해되지 않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의 인생 샷에 해당하는 책이 몇 권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책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책이 지식을 습득하는 가장 훌륭한 창구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가장 멋진 장치라는 점이다. 어떤 책이 그러했냐고 물으면 그때그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건 내 인생의 발달 과업이 달랐기 때문이다.

미스 시절 <사람풍경>은 나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결혼 후 임신이라는 놀라운 경험은 달이 차면서 점점 두려움으로 느껴졌고, 그때 <황홀한 출산>은 출산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고 씩씩하게 아이와 만남을 준비하게 해 주었다.

그전까지 동서양의 고전과 베스트셀러 위주로만 읽던 일반적 독자인 나에게 이런 경험은 실로 다양한 책이 존재한다는 자각을 하게 했다. 또 자신의 상황에 맞는 독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독서가 지금 현재 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독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후 학생들에게 책을 추천할 때 그 친구의 상황에 맞는 책을 추천하고 이런 의문으로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하고 독서 지도를 하게 되었다.

최근 아이들과의 상담에서 진로, 친구 관계 고민을 토로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하며 독서활동을 통해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혹자는 나의 책에 대한 접근이 너무 감성적이지 않은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본래 감성적 존재가 아니던가.

최근 나는 인생의 책은 고사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 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 내 책상에는 읽고 싶은 책만 쌓여 있고 몇 년째 제목만 보고 있는 책도 부지기수다. 그나마 토론전문교사단의 독서모임을 통해 <무지한 스승>을 읽으며 가르친다는 것의 철학적 의미를 생각해 보고 있는 것이 최근의 미미한 성과다. 하여 조선 시대 상대적으로 여유를 많이 가진 양반들이 독서를 통해 사유하고 글을 썼던 이유를 내 나름대로 실증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인생이란!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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