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역사, 교훈삼아야”

▲ 지난 26일 CK치과병원 CK아트홀에서 열린 제8기 비즈니스컬처스쿨에서 신병주 건국대 교수가 ‘호란과 북벌 그리고 북학’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오늘날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는 조금씩 모습이 달라질 뿐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26일 울산 CK아트홀에서 열린 경상일보 제8기 비즈니스컬처스쿨(BCS)에서 신병주 건국대 교수는 이같이 설명했다. 이날 신 교수는 ‘호란(胡亂) 북벌(北伐), 그리고 북학(北學)’를 주제로 강연을 맡아 조선시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친 뒤 효종의 북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1616년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한 이후 인조는 친명배금의 정책을 수립하고 후금을 배척한다. 누르하치의 장례식에 불참할 뿐만 아니라 누르하치의 아들인 홍타이지의 즉위식에서도 조선의 사신들은 강경한 태도를 취해 후금을 자극하게 된다.

신 교수는 “당시 조선 내부에서는 ‘무찌르자 오랑캐’라고 말로만 외칠뿐 군사적인 대비가 전혀 없었다. 이에 1627년 정묘호란이 터지자 강화도로 피난을 가게 되는 것”이라며 “또한 그 이후에도 후금에 대한 강경 분위기가 유지되면서 홍타이지는 조선을 정복의 대상으로 변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1636년 병자호란이 다시 발발하면서 청태종은 직접 12만 군대를 조선 침공에 나서게 된다. 기마병 중심의 청군은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압록강을 넘은지 5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인조는 강화도로 통하는 길이 차단되자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간다.

그는 “정묘호란 때는 청나라의 군대가 수상전에서 약점을 보였지만, 이후 명나라 해군을 포로로 끌어들이면서 해군의 전투력을 보강해 강화해협을 점령한다”며 “인조는 ‘삼배구고두’의 항복의식을 치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조선은 청과 정축화약을 통해 군신관계를 맺고 매년 많은 여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이는 이전에도 몽골의 침략 당시 공녀를 보내던 것과 관련해 조선시대에 조혼 풍습이 자리잡게 된 이유”라며 “이같은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난간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의 진행을 맡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책으로 보는 조선의 역사>, <왕으로 산다는 것> 등이 있다. 이우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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