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소득 3만불시대가 무색한
우리나라 노인층의 절대빈곤 현실
벚꽃처럼 질때 아름다울수는 없을까

▲ 이태철 논설위원

“필때는 장미꽃처럼, 흩날릴때는 벚꽃처럼, 질때는 나팔꽃처럼.” 문뜩 떠 오른 글귀다. 기억을 더듬을 새도 없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뜻으로 했는지도 모르면서 잇몸에 박혔던 가시처럼 그냥 튀어나온다. 출근 길 시선을 빼앗었던 벚꽃때문이었을까. “봄 바람에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몸에 밴듯 익숙한 멜로디에 입술을 맡긴다. 봄 노래로 수년째 사랑받고 있는 ‘벚꽃엔딩’이지만 가사 전체는 모른다. 주구장창 ‘봄바람에 휘날리며~’ 한 구절에만 머물러 있다. 흩날릴때 가장 아름답다는 벚꽃의 모습이 중년의 인생과 닿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살아갈수록 복잡해지고 인생은 살아갈수록 간단해진다. 그래서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떠날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는 소설가 이외수의 말이 가슴에 꽃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유달리 춥게 느껴졌던 지난 겨울이 무색하리만큼 따뜻한 기운이 대지를 감싸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경연이라도 하듯 대지에서는 봄꽃을 피워댄다. 그렇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상사는 변하는 계절과는 상관없어 보인다. 뭔지 모를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에 짓눌려 있다. 미세먼지 가득한 잿빛하늘처럼 제한된 희망에 대한 공감만을 불러일으키는 불확실한 세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아름답고 열정적인 장미꽃처럼 피어야 할 우리의 청춘은 좌절과 분노의 ‘헬조선’에 갇혀 있고, 아주 조용히 알게 모르게 지는 나팔꽃의 아름다움에 비유되는 노년은 가난과 역할상실로 인한 고독의 틀에 끼여 소리없는 비명만을 질러대고 있다.

그런 가운데 1인당 국민소득(GNI) 3만달러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소식이다. 큰 이변이 없으면 올해 1인당 GNI 3만달러를 돌파하리란 전망이 나온다. 1인당 GNI 3만달러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한국 경제가 목표로 삼아왔다. 그러나 체감 경기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서민들의 삶은 제자리 걸음이어서 1인당 GNI 3만달러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의 빈곤율에 해당하는 노인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말 OECD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2.7%, 76세 이상은 60.2%로 비교 대상 38개국 가운데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끝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멕시코의 2배나 되는 수치다. 비슷한 시기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우리나라 은퇴 가구의 62.3%가 생활비 충당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가구주와 배우자의 월평균 최저생활비는 192만원, 적정생활비는 276만원이다. 특히 은퇴한 가구주와 배우자의 생활비 마련 방법은 ‘공적 수혜금’(30.4%), ‘가족 수입 및 자녀 등의 용돈’(27.9%), ‘공적연금’(27.2%), ‘저축액·사적연금’(4.2%) 등으로 나타났다. 통계에서 보듯이 개인 보유 자산에서 나오는 돈은 매우 적다.

세상 누구보다도 격동의 세월을 보낸 앞 세대들이다. 서구 사회에서 수백년에 걸쳐 이뤄진 농경사회­산업사회­정보사회를 단 한세대에 겪었다. 변화에 적응, 생존하느라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가족을 돌보고, 나라를 살찌우며 제 할일을 다했건만 남은 것은 한몸처럼 붙어 있는 가난과 고독이다. OECD국가중 노인빈곤율, 노인실업률, 노인자살률 1위의 불명예스런 기록과 함께이다. 장미꽃처럼, 벚꽃처럼, 나팔꽃처럼 아름답게 피고, 흩날리며, 지지는 못할지언정 더 이상 버림받는 느낌은 들지 않는 우리 사회를 기대해 본다.

이태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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