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상대방과 눈을 맞추는 것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해와 배려로 더 좋은 결과 도출

▲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도로에서 난폭차량을 만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생각을 돌이켜, 해당차량 운전자와 눈빛을 마주친 적이 있는가 되짚어 보면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상대가 의식적으로 눈마주침을 피하거나, 아예 차량 실내가 안보일 정도로 유리가 시커멓다.

이번에는 왠 눈빛타령이냐면 출장을 다녀오며 겪은 일이 있어서다.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수많은 차량과 조우했는데 모두 눈빛이나 고개 까닥임, 손짓으로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운전자끼리 눈을 맞추고, 고개 까딱임, 손짓으로 순서를 정하고 차량을 진행하는 그런 시스템은 우리나라에서 통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눈빛은 고사하고 탑승자 실루엣조차 안보이는 어두운 유리창이 철저히 의사소통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다른나라에서는 대체로 차량실내가 훤히 들여다 보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차량들이 도로교통안전법규를 넘나드는 짙은 컬러로 틴팅되어 실내가 잘보이지 않는다. 교통사고비율 세계수위권인 우리나라에만 두드러진 요소다. 이 점을 고려하면 눈마주침같은 직접 소통의 부재가 교통사고나 난폭운전발생율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화상회의가 있다. 시스템이 제 아무리 최첨단에, 극단적 현실감을 부여하는 수준이라해도, 진짜회의에 비하면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하다. 외교에서 국가간 의사소통 수단으로 다양한 간접경로를 사용하지만 최종에는 정상끼리 직접 만난다. 눈을 맞추고 웃으며 악수하는 인증샷으로 회견을 연다. 왜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날까? 간접소통중 일어날 수 있는 오해를 막는 것이 일차적 이유다. 또 직접 눈빛을 마주해 신뢰를 쌓고 ‘이해와 배려’를 나눠 최종안을 도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메일을, 전화를, 문자와 톡을 주고 받지만 사람사이 모든 실체적커뮤니케이션은 결국 직접 대면을 전제하고 있다. 이처럼 생명체 인간끼리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눈을 마주해야 ‘이해와 배려’가 생겨난다. 논리트리에 따르고, 데이터통계, 경우의 수분석을 통해 의사소통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기계, 인공지능 사이의 커뮤니케이션과 궁극적으로 다른 점이다.

필자는 커뮤니케이션의 급속한 간접화가 가져올 이해와 배려의 사라짐을 우려한다. 직접 만나 눈을 마주치고 표정을 살피며 진행하던 인간커뮤니케이션이 기술발달과 효율성제고에 의해 자동화, 무인화, 간접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부작용도 있다. 지금은 80년대 이전의 추억이 된 버스차장이 지금도 탑승객의 승하차를 살피고 운전자와 눈빛을 마주치며 보조하고 있다면 등하교버스 유아사망사고, 운전자 졸음충돌사고는 크게 줄었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주문할때 키오스크를, 주차장에서 무인정산기를, 은행거래에서 모바일과 무인인출기를 이용하는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눈빛을 마주칠 모든 상대가 단말기 안내화면이나 로봇이 될 것 아닌가. 딱딱한 단답형 커뮤니케이션으로 화면을 터치하고, 로봇에 달린 마이크에 대화를 거는 모습은 인간·비인간성을 떠나 건조함의 극치다. 물론 데이터축적과 분석기술의 고도화로 단말기나 로봇이 무성의한 인간보다 더 감성적이고 세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일부 서비스종사자나 공무원은 화자를 이해, 배려않고 앵무새처럼 숙지된 안내를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음성·문자의 교환에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기계나 로봇보다 정확도나 전송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람이 해당 업무를 맡는 이유는 기계나 로봇이 못하는 ‘이해와 배려’를 통해 더 좋은 결과물을 내기 때문이다. 규정대로 자기입장, 주장만 되풀이 하려면 녹음기를 틀어놓으면 된다. 굳이 인건비들여 사람을 쓸 이유가 없다. 사람끼리 굳이 대면해서 눈빛을 마주치고, 회의하고 악수하고 사인하는 이유는 ‘이해와 배려’에 있다. 이해와 배려는 그래도 아직까지 기계, 로봇보다 인간이 더 우세한 가장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영역이기 때문이다. 같은 종족끼리 서로 신뢰하는 생물학적 본능때문이다.

더늦기전에, 사람을 만나 눈빛으로 교감하고 ‘이해와 배려’를 나누는 인간적 커뮤니케이션을 즐기자. 창의와 세상놀래키는 결과물이 나온다. 19세기이래 과학문화예술사상을 넘나드는 유럽문명의 획기적 발전은 인간끼리 교감했던 카페와 살롱에 있었다. 미세먼지 걱정해도 벚꽃피는 봄 아닌가? 얼마지않아 로봇과 대화하며 희한한 감정을 느끼기 전에 말이다. 오늘이 내인생 가장 젊은 날이다.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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