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편 (38)이복락과 울산구치소 도서관

▲ 대륙 이복락은 출소자들의 생활안정에 힘썼는데 그의 아들 수만씨는 이런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1994년 울산구치소가 문을 열었을 때 도서를 기증해 구치소 내 도서관을 건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은 울산청년회의소 12대 회장인 수만씨가 1979년 ‘도서관 건립시민 걷기대회’를 개최하며 울산초등학교 단상에서 ‘도서관 건립 성명서’를 낭독하는 장면이다.

젊은 시절 울산체육회에 헌신했던 대륙 선생
50대후반부터 수감·출소자의 복지 위해 노력
1994년 숨거두며 그들 돌보라고 자녀들에 유언
아들 수만씨, 부친 장례식때 받은 부조금으로
도서 1200여권 구입…울산구치소 도서관 개관

울주군 청량면 문죽리에 있는 울산구치소는 현재 6000여권의 도서를 갖추고 독서를 통한 수감자들의 정서순화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 울산구치소가 도서관을 갖추게 된 데는 초대 법무부 갱생보호 울산협의회장을 지냈던 대륙(大陸) 이복락(李福洛) 어른과 그의 아들 울산광역시의회 부의장을 지냈던 수만(78)씨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918년 울주군 청량면 덕하리에서 출생했던 대륙 선생은 울산공립보통학교, 울산농업보습학교(현 울산공고)를 거쳐 울산 체육의 발전과 출감자들의 복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의 체육활동을 보면 1948년 울산체육회 이사를 시작으로 1967년에는 울산씨름협회장, 1968년 경남체육회 이사를 거쳐 1969년에는 정창화씨에 이어 울산체육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대륙이 사무국장을 지낼 때만 해도 오늘날처럼 울산시가 체육회 운영을 위해 따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체육회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 대륙과 함께 울산체육회 활동을 했던 설성재(86)씨는 “이복락 어른이 사무국장을 지낼 때 울산체육회가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체육회 운영자금이 없어 이 국장이 체육회 살림을 사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특히 이복락 어른은 사무국장으로 있는 동안 울산씨름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도록 힘썼다”고 회상한다.

대륙이 수감자들과 출감자들의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해방 후 1대부터 3대까지 울산 읍 의원을 지낼 때다. 해방 직후 울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생활고로 옥중 생활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옥중 생활을 한 사람들 대부분이 출감 후에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잦았는데 이 때 대륙은 우리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출감자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 시절 체육회 일로 바쁘게 보내었던 대륙이 수감자들과 출감자들의 복지를 위해 활동 한 때가 50대 후반인 1977년 법무부 갱생보호 경남 및 울산지구보호위원이 되면서다. 이후 1983년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 조정위원을 지낸 대륙은 이해 법무부 갱생보호위원회 울산협의회 회장이 되었다.

갱생보호위원회는 1961년 공포된 ‘갱생보호법’에 따라 출소자들의 건전한 사회복귀를 추진함으로 그들이 재범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일을 했다. 대륙이 출감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추진한 일이 출소자들의 취직이었다. 대륙은 갱생보호위원들과 함께 울산공단 사장들로 구성된 울산공단협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출소자들의 취직을 부탁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아직 갱생보호에 대한 취지를 아는 공장 간부들이 적어 대륙은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 대륙과 함께 갱생보호위원회 일을 함께했던 임재곤(70) 부회장은 “이복락 회장이 갱생보호위원회 회장으로 있을 때만 해도 공업도시 울산은 타 지역에 비해 범죄율이 높아 갱생보호 업무가 많았지만 아직 갱생보호위원회가 조직적인 체계가 갖추지 못하다보니 이를 운영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이 회장이 부담을 할 때가 많았다”고 회상한다.

또 대륙이 회장으로 있을 때 총무로 일했던 김장배(80) 전 울산교육위 의장은 “당시만 해도 갱생보호위원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지만 내가 운영했던 동신약국 이웃에 살면서 사회 활동을 활발히 했던 이복락 회장이 나에게 총무직을 맡아 달라고 부탁해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면서 “그러나 총무가 되고 보니 할 일이 너무 많아 이 회장과 함께 김해 교도소를 여러 번 방문해 수감자들을 격려하고 또 출감자들의 취업을 위해 울산석유화학 공단 등 많은 곳을 다녔다”고 말한다.

대륙은 이외에도 갱생보호 자금 마련을 위해 당시 전국을 돌면서 갱생보호 활동을 펼치고 있던 박삼중 스님을 울산에 초빙해 그림 전시회도 개최했다. 이 때 대륙은 김장배 총무와 함께 박삼중 스님의 그림을 여러 점 구입했고 울산시민들을 상대로 그림 사주기 운동을 벌이는 등 수감자들의 복지를 위한 자금모금에 적극 참여했다.

이런 대륙의 활동은 그가 영면한 후 그의 아들 수만씨로 이어졌다. 대륙은 1994년 4월 숨을 거두면서 자녀들에게 수감자와 출소자들을 돌보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런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수만씨가 처음 한 일이 도서 기증이었다. 울산에 구치소가 처음으로 건립된 것이 대륙이 타계한 한 달 후로 이 때만 해도 구치소에 도서관이 없었다. 그런데 이를 안 이씨가 부친의 장례식 때 받은 부조금 500만원으로 1200여권의 도서를 구입해 울산구치소에 기증함으로 도서관을 개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 5월3일자 부산일보는 ‘선친유지 따라 못다한 봉사매듭’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

50대 독지가가 이달 초 개소한 울산구치소의 수감자들을 위해 1200여권의 책을 기증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수만씨는 지난달 29일 울산군 청량면 문죽리 울산구치소에 문화서적 20권, 한자공부 책 200권, 영어학습 책 200권 등 모두 500여만원에 상당하는 1200여권의 신간 서적을 기증했다. 이씨는 지난 4월 작고한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부친 상 때 받은 부조금으로 도서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부친은 생전에 법무부 산하 갱생보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난 1984년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는 등 범죄자 선도활동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이씨는 “평생을 범죄자의 새 삶을 위해 활동하신 부친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도서를 기증하게 되었다”면서 “앞으로도 이들을 위해 조용히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가 이처럼 수감자들을 위해 책을 기증하게 된 것은 자신이 1979년 울산청년회의소 12대 회장으로 있을 때 벌인 도서관 건립 운동과 무관치 않다.

1979년 울산시는 이미 시 승격 20여년 가까이 되고 인구가 40만을 넘어서고 있었지만 도서관이 없어 이에 따른 시민들과 학생들의 불편이 많았다. 이 때 이 회장을 비롯한 울산청년회의소 회원들은 울산의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서관 건립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닫고 도서관 건립 포스터를 울산 전역에 붙이고 ‘도서관 건립을 위한 시민 걷기대회’를 벌였다. 시민걷기대회에는 시민들은 물론이고 특히 학생들이 많이 참석했다. 이들은 울산초등학교에서 도서관 건립을 위한 성명서를 낭독한 뒤 태화교를 지나 공업탑 로터리까지 왕복 도보 행진을 했다. 이 행사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아 550만원의 도서관 건립 기금이 모아졌다.

이 회장은 이 돈을 당시 이재덕 울산시장에게 전달하면서 울산시 차원에서 도서관을 건립해 줄 것을 요망했다. 이런 소문이 나자 시내 중심가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던 고필용씨를 비롯한 지역유지들이 도서관 건립을 위한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이를 추진하던 울산시가 행정상 난색을 보여 이 일이 미루어지고 말았다.

울산구치소는 초기 대륙의 높은 뜻을 고맙게 생각해 도서관 내에 대륙의 초상화와 그의 휘호도 걸었다. 그러나 이후 책이 늘어나면서 공간이 부족해 지금은 초상화와 휘호가 사라진 상태다. 울산구치소는 이씨가 기증한 도서를 처음에는 명세서를 각 방마다 비치해 수감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그동안 도서관 운영방법이 많이 바뀌면서 도서 대출의 방법도 변화가 많았다. 특히 최근에는 수감자들이 원하는 책을 외부에서 구입해 볼 수 있도록 구치소 도서법이 바뀌면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수감자들과 도서관의 역할도 크게 줄어들었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현재 울산 구치소에는 울산 병영 출신으로 울산대학을 졸업한 유승목(40) 교사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수감자들의 책 심부름을 하고 있다. 유씨는 “이수만씨가 도서를 기증한 것이 20여년이 넘다보니 도서관 운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초기 구치소가 어려울 때 수감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갱생보호에 앞장 선 대륙 선생과 이씨의 도서기증이 울산구치소 내에서는 울산시민들의 모범적인 선행으로 남아 있다”면서 “특히 이씨는 책 기증 외에도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울산구치소가 문을 열자 교정위원으로 들어온 후 15년 동안 수감자들의 교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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