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명림원지가 하지왕의 물음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분은 중국을 제패한 진황한무도 아니고, 위오촉의 삼국통일을 이룬 사마의도 아니고, 하지왕에게 제왕학을 가르쳐주었고, 일시나마 한반도의 사국통일을 이룬 광개토대왕도 아닙니다. 천하를 통일한 분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명림원지가 합장을 하며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왕은 뭔가 허를 찔린 듯했다. 우사와 모추는 다시 경멸의 태도로 돌아갔다.

모추가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이런 젠장, 석가모니라니! 우린 지금까지 빼앗긴 대가야를 다시 찾는 절박한 대업을 말하고 있는데 염불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으라는 것인지.”

우사도 말했다.

“석가모니는 정치와 역사를 논하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지 않소. 그렇다면 공자, 노자, 단군, 종교와 신화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얘기밖에 되지 않소이다.”

명림원지가 좌정한 채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 성도하신 후 법륜의 수레를 타고 천축을 정복하고 서역 끝에서 파미르를 넘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와 세계를 정복하였습니다. 그의 영토와 통치력은 이 천하에 미치지 않은 데가 없으므로 석가모니야말로 천하를 통일한 전륜성왕입니다.”

모추가 비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칼과 활로 싸우는 우리더러 성인을 본받으라는 것입니까?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소리만 하십니다그려.”

실증적 사가인 우사는 조리 있게 반박했다.

“석가모니는 한 치의 땅도 정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물려받을 왕국마저 잃어버린 걸승에 불과합니다. 석가는 가비라왕국을 물려받을 태자신분을 버리고 설산으로 들어가 고행 끝에 그곳에서 도를 깨쳤습니다. 석가는 당시 천축의 사성 계급제도를 비판하고 모든 중생은 평등하다고 해 천민으로부터 제법 세를 얻어 교단을 만들었으나 정작 그의 가비라왕국은 이웃 고사라 왕국에게 점령당하고 그 백성들이 무참히 살육을 당할 때에도 공허한 설법만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늙고 기력이 빠진데다 식중독에 걸려 구시에서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석가의 몸에 맞는 관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어 작은 관에 시신을 넣어 맨발을 내민 채 죽었습니다. 불교는 그가 죽고 난 뒤에 천하에 퍼진 것이고 석가는 왕자로 태어나 걸승으로 객사한. 실패한 인간일 뿐입니다.”

“……”

명림원지는 우사의 변설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석가의 가르침은 모든 행위는 무상하니 욕망하지 말 것이며, 모든 생명은 소중하므로 살생하지 말고 공덕을 쌓아 극락에 가라는 것입니다. 허무와 내세에 치우친 이런 교리는 전쟁을 통해 대가야를 찾고 가야연맹체의 맹주자리를 찾아야 할 우리 현실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늙다. 【S】nirigada(니리가다), 【E】decline. 늙은이는 ‘nirigauni(니리가우니)’로 ‘내려가다’와 같은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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