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하지왕은 죄수들이 고마웠다. 비가 계속 내려 노역을 나가지 못하면 힘들 텐데 죄수들마저 셋의 집행을 걱정하며 일심으로 비가 오기를 기원해주었기 때문이다.

명림원지의 말을 계속 이어졌다.

“절에 모신 석가모니 불상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것은 석가가 바로 전륜성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천하에 흩어져 있는 불자들은 그들을 통치하는 국가의 왕보다 석가모니를 최고의 전륜성왕으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마마, 왕으로 계실 때 얼마나 많은 백성을 만나 말씀하셨습니까?”

명림원지의 물음에 하지왕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어리고 미거해 대부분 섭정인 어머니께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겠지요. 다른 왕들도 직접 백성을 만나 말하는 것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석가모니 전륜성왕은 매일매시 그의 백성들에게 나타나셔서 법어를 내립니다. 방금 죄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염불을 올렸듯이 석가만큼 광범위한 땅에서 자기의 백성을 하나로 지배하는 통치자는 없습니다. 하여 제가 천하일통의 대업을 이룬 분은 석가모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왕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우사와 모추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들은 명림원지의 말잔치에 초대받아 진수성찬을 받아먹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면 장차 하지대왕께서 어떻게 대업, 중업, 소업을 이루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명림원지는 큰 것부터 이야기하고 중간 것 그리고 세부적인 작은 것을 말했다. 그의 화법은 마치 칼로 하나의 큰 떡을 반으로 자르고 그것을 다시 반으로 잘라 잘게 썰어나가는 과정과 같았다.

“하지왕께서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것은 불교로 사국과 왜를 통합하고 중국과 천축, 그 너머의 나라까지 영향력을 미쳐 천하일가를 이루는 것입니다. 다행히 가야는 김수로왕과 허황후가 불교로 건국이념을 삼았으며 나라의 이름도 불국토인 ‘가야’로 정했습니다. 가야불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북방 대승불교와 달리 천축에서 바로 들어온 정통 남방불교이고 사국중 가장 빨리 전래되었기 때문에 가야는 불교로 세계를 통일하는 동방의 부다가야가 되고 대왕께서는 천축의 아육왕처럼 또 한 분의 전륜성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가야불교 대업론입니다.”

하지왕은 명림원지 특유의 과장법을 이해하더라도 자신이 전륜성왕이 된다는 것은 너무 나갔다 싶었다. 하지만 명림원지의 가야불교 대업론은 침체된 가야불교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데 의의가 있었다.

“다음은 사국일통의 중업입니다. 먼저 가야는 칠포를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를 끼고 있는 해상강국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동북아 최고의 생산력과 기술을 자랑하는 철 강국입니다. 마지막으로 낙동강을 낀 넓은 가야 평야의 농업 생산력을 가진 농업강국입니다. 이 셋을 기반으로 외교와 전쟁을 통해 사국일통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야는 먼저 약한 왜를 쳐야 합니다. 왜는 아직 불법의 광명을 받지 못한 미개한 나라로 쉽게 신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국세가 기울어가는 백제를 쳐서 먹은 다음, 고구려로부터 신라를 떼어내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 사국일통의 중업입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나타나다. 【S】nato(나토), 【E】appear. ‘나타나다’의 우리말 어원은 ‘나토다’로 ‘화현(化現)하다’는 뜻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