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짓듯 밑바닥부터 다져
국민을 아끼고 섬길줄 아는
존경받는 정치인 많아지길

▲ 성인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방을 정리하다 책장에서 오래 된 사진 두 장을 발견했다. 2007년 11월께 청와대에서 참여정부평가포럼 회원들과 찍은 단체사진이다. 첫 사진은 울산에서 올라간 참평포럼 회원들이 행사를 마치고 고 노무현 대통령 부부, 비서실장 등과 찍은 사진이었다. 두번째 사진에는 노대통령 부부를 중심으로 좌우에 포럼전국대표들이 의자에 앉았는데, 좌우 두 분이 서서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 끝에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 현 대통령이, 왼쪽 끝에 안희정 당시 참평포럼 상임대표, 전 충남지사가 섰다. 필자는 포럼울산대표였다.

사진을 보다가 책 <강금원이라는 사람>에 나오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났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비서실장에게 ‘정치하라’고, 유시민에게 ‘정치하지 말고 책 써라’, 그리고 안희정에게 ‘자네는 정치하지 말고 농사를 짓는 게 어떤가?’라고 권했다 한다. 화기애애하게 식사하던 중 안희정에게 던진 이 말의 의미는 이후 정확히 해석되지 않았다 한다.

정무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사직 사퇴와 정치활동 중단을 선언한 가운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거 안 지사에게 정치 대신 농사를 권유한 일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안 지사에게 당시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안 전 지사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 하지만 그가 처한 복잡한 현실을 보게 된다.

동시에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젊은 시절이 생각났다. 그는 196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 당시 10번 이상 공산당 입당원서를 제출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출세하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공산당원은 8875만명으로 인구 13억8271만명 인구 중 6.42% 비율이다.(2017년 기준) 국무원 부총리와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이었던 시중쉰의 장남인 시진핑은 혁명 원로들의 자녀그룹인 ‘태자당’이지만 이 때문에 젊은 시절 문화대혁명 당시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1960년대 초 부친이 반당분자로 몰려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 사상개조를 받는 상황에, 1969년 ‘지식청년’으로 분류된 시진핑은 산시성 옌안시 량자허촌 시골로 하방(下放)되어 허름한 집에서 고생했다. 성실하면서도 믿음직한 청년 시진핑을 눈여겨 본 현 위원회 서기의 추천으로 그는 부친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나오기 전인 1973년 나이 20세에 입당을 허가받았고, 곧 바로 그는 량자허 대대 지부의 서기로 발탁됐다.

농촌 허름한 집에서 고생하던 7년간, “처음에 의지할 사람도 없어 무척 외로웠지만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내 숙소는 현지의 마을회관처럼 변해갔다.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찾아오면 내가 알고 있는 동서고금의 여러 문제에 대해 상담해 드렸고 당지부 서기도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1975년, 추천 제도로 옌안지구에 배정된 2명의 정원 중 한 자리 배정받아 명문인 칭화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가 젊은 시절 심한 고초를 겪고, 농민과 노동자들과 지낸 7년간의 경험(실사구시와 인민의 생활을 배웠던 당시 경험)이 매우 소중한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회고문에서 하방경험은 실제 현실을 파악하고, ‘스스로 힘써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쉬지 않는’ 자세를 배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안희정에게 던진 고 노무현 대통령의 혜안에 놀라게 된다. 농사를 낮추어 말한 것이 아니라 사람 농사를 짓듯이 바닥에서부터 다져서 올라오라는 말을 넌지시 했다고 필자는 해석했다.

정치 계절이다. 많은 예비후보들과 후보들을 길거리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이 안희정 처럼 ‘가서 농사지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처럼 ‘정치를 해도 될 만큼 사람들을 아끼고 섬기는 사람들’이기를 빈다.

성인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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