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명림원지는 마지막 소업에 대해 말했다.

“소업은 우선 22가야를 일통하여 가야연맹체를 국가체제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대가야의 하지대왕께서는 원교근공 정책으로 열두 가야를 되찾아야 합니다. 중앙정부는 가야불교를 국교로 삼아 왕권을 강화하고, 율령을 반포하여 관료제를 시행하며, 중앙상비군을 두고 분산되어 있는 국가방위를 일원화해야 합니다. 가야 소국들을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 5부에 수렴시키고 군현제를 실시하여 왕권이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소업입니다.”

우사가 정중하게 말했다.

“지금 하지대왕께선 보위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린 뇌옥에 갇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소업, 중업, 대업을 논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뇌옥을 탈출해 박지를 물리치고 대가야를 찾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쉬운 당면과제입니다. 그건 우사 선생과 모추뿐만 아니라 죄수들도 알 수 있는 잔업에 불과합니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업들을 성취할 수 있는 결정적 사건은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고 금관가야와 임나왜소를 몰락시킨 여가전쟁(400년)입니다. 이 전쟁이 있었기에 대가야는 가야연맹체의 맹주국으로 우뚝 서 사국을 이끌 중심이 된 것입니다. 영명하신 하지대왕께선 소업, 중업, 대업을 이루시고 마침내 태왕의 자리에 오르실 것입니다.”

말을 마친 명림원지는 하지왕에게 큰 절을 올렸다.

“이 절은 미래의 전륜성왕 하지태왕께 올리는 절입니다.”

하지왕은 한 사람의 몽상가로부터 절을 받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명림원지의 옥중유세를 통해서 앞으로 대가야가 나아갈 대강이 보였기 때문이다. 왕으로 태어났다면 원대한 대업을 품고 행동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지왕도 명림원지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연작이 어찌 대붕의 마음을 알겠소. 지금부터 와륵선생을 나의 군사로 삼겠소. 암우한 나를 잘 이끌어 주시오. 우사와 모추, 군사에게 절을 올리시오.”

태사령 우사와 호위무사 모추도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절을 올렸다.

명림원지가 말했다.

“저를 대가야의 군사로 삼으셨으니 명림 가문의 광영입니다. 그럼, 군사로서 첫 일을 파옥으로 시작하지요.”

모추는 이제야 명림원지가 몽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것을 반기는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파옥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옥문을 깨고 여기서 나가는 것입니까?”

“그렇소. 내일 하루만 더 비가 내리고 모레 날이 갤 때면 석공 스님과 함께 검바람재 녹림부대가 이곳에 도착해 사물성을 칠 것입니다. 성의 병사가 내응하여 성문과 옥문을 열고 정변을 일으킬 것입니다. 소아주 대신 소아장의 아들 소아성을 새로운 한기로 옹립할 것입니다. 절두터 사형 집행장에서 세 분 대신 소아주의 목이 베어져 장대에 걸릴 것입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절. 【S】dri(드리), 【E】worship. ‘절’의 옛말은 ‘뎔’로 어원이 같다.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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