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2.

▲ 인레 호수로 들어가는 선착장. 가슴이 시리도록 청량한 푸른 물, 그 수면 거울에 비친 산 그림자와 흰 구름, 모네의 수련 같은 수초들, 그리고 춤사위 같은 어부들의 노젓기… 너무나 아름다운 호반이 펼쳐진다.

기막힌 절경 인레호수 주변 마을 보며
자연친화적인 삶에 무릉도원 떠올려
한편으로 일상이 구경거리로 전락한
그들의 삶은 과연 행복할까 궁금해하다
이또한 세속인의 편견임을 다시 깨달아

 

잔뜩 찌푸린 만달레이의 하늘을 뒤로 하고 버스는 한 없이 교외로 나아간다. 인적도 없는 교외의 벌판을 한 시간 남짓 달려가면 만달레이 공항이 나타난다. 교외를 빠져 나오는 동안 마을은커녕 인가다운 것도 보지 못한 벌판이었는데 이 먼 곳에 공항을 건설한 이유가 궁금하다. 수상이라는 사람이 자기 고향이라고 굳이 이곳에 공항을 만들었다고 한다. 군부 독재자들이 벌였던 전근대적 전횡의 표본이라 할 것이다.

기가 막힌 활주로 위로 프로펠라기가 떠오른다. 불과 21분 만에 헤호공항에 도착한다. 이 거리도 버스로 가자면 예닐곱 시간이 족히 걸리는 길이라고 한다. 하늘 위에서 보아도 포장된 도로는 전혀 볼 수가 없다. 시골 역 같은 헤호공항을 빠져나와 인레호수로 향하는데 그제서야 이 나라의 도로사정을 알 수가 있다. 포장은커녕 도로 폭도 두 대가 교행하기에는 아슬아슬한 길이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미얀마의 진짜 농촌을 볼 수가 있다. 허약한 목조뼈대로 간신히 서있는 고상주거들, 기막힌 절경 인레호수 주변 마을 보며

자연친화적인 삶에 무릉도원 떠올려

나무껍질로 짠 외벽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허름한 살림살이, 시간은 19세기 말로 되돌아가는 듯싶다. 그래도 시장은 나름대로 활기가 있다. 비교적 깨끗하고 질서가 있으며 물건도 다양하다. 엿으로 곤 강정이 무척이나 맛있어 보여 서성대니 금방 ‘맛배기’를 준다. 그 순진한 미소가 오래 남는다.

호텔 부근에 초등학교가 있기에 슬며시 들여다 본다. 일제강점기 보통학교처럼 허름한 교사에 식물줄기로 짠 칸막이벽으로 구획해서 반을 나누었다. 낯선 사람들의 갑작스런 방문에 아이들 눈이 등잔 만해 진다. 그리고는 곧 들으라는 듯 목청 높여 책을 읽는다. 불현듯 심훈의 상록수와 ‘국민’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바로 옆에 있는 리조트는 전혀 다른 별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왕궁과 같은 전통목조 건축을 본관과 레스토랑으로 하고, 넓은 단지에 방갈로식 호텔 건물을 배열했다. 방갈로들 사이로 인레 호수의 기막힌 절경이 나타난다. 호수를 바라보며 드넓은 전용 선착장까지 갖추고 있다. 호수 위에도 방갈로들이 열 지어 떠 있다. 호수의 일부분을 담으로 막고, 배들이 드나드는 문까지 설치해 놓았다.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는 표식이다. 식민지 시대의 조계지를 연상케 한다.

인레 호수. 동남아시아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호반이 있을까. 가슴이 시리도록 청량한 푸른 물, 그 수면 거울에 비친 산 그림자와 흰 구름, 모네의 수련 같은 수초들, 그리고 춤사위 같은 어부들의 노젓기, 도연명이 보았다면 ‘무릉도원’의 모습이 이렇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는 분명 메콩강의 탁류가 모이는 톤레삽 호수의 모습과 다르다.

좁고 긴 배는 수면을 미끄러지며 호수 안으로 들어간다. 호수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마을과 집과 삶이 다가온다. 과학기술과 기계문명에 찌든 눈으로 보면 미개하거나 원시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환경이며, 삶의 양식이다. 하지만 문화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오로지 그들만의 독특함이 펼쳐진다. 때 묻지 않은 순수성, 환경과 문화가 어우러진 통합성, 완결성, 토속성의 아름다움이다.

그들이 어떤 연유로 이 호수 위에 정착했는지 아직 모른다. 오랜 세월동안 물 위에 살면서 독특한 삶의 양식을 발전시켜 왔음은 분명하다. 수초를 이용해 물 위에 토마토 밭을 일구는 지혜도, 외발로 노를 저으며 통발 낚시하는 기술도, 기둥을 이용해 물 위에 바닥을 설치하는 고상건축의 기법도, 사람과 환경과 시간이 만들어낸 삶의 양식이다. 결코 허름하지 않은 수상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풍경은 한편의 서정적 그림이다. 순수 토속적 정경의 아름다움은 늘 사람을 감동시킨다.

고립된 섬처럼 호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마을들은 뱃길로 정교하게 엮어진 공동체를 이룬다. 뭍에 기반을 둔 큰 마을은 도회를 이루기도 한다. 거대한 불교 사원이나 관청, 시장, 학교, 병원 등 근린시설들이 자리한다. 그러나 관광산업이라는 요물은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구경꺼리’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연실로 천을 짜는 공장으로부터 대장간, 시가를 말아 파는 작업장, 심지어 목에 링을 끼워 목을 늘인 빠다웅 족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신기한 세상의 풍물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들과 관광객 사이의 간격을 벌려 놓는다. ‘구경하는 나’와 ‘보여주는 그들’ 사이에 복잡한 감정의 관계가 일어난다. 그것은 결코 인류라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다. 미개와 문명, 선진과 후진사이의 우월과 열등, 그리고 관광이라는 새로운 생존전략에 기대야 하는 그들의 삶이 민속촌의 무희들처럼 가장될 뿐이다. 반복적인 노동에 찌든 그들에게서 진솔한 ‘순수의 미소’를 찾아 볼 수 없다.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장자는 이렇게 묻는다. ‘그들이 불행해 할 것이라는 것을 그대는 어찌 아는가?’ 답이 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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