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3월의 끝자락, 영화를 보러 갔다.(3월은 언제나 길다. 올해는 3학년 담임을 맡아 3월 내내 반 아이들과 상담을 하느라 매일 10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을 하곤 했다. 아침 8시 출근, 밤 10시 퇴근, 아 14시간 근무라니. 충전이 필요했다.) 영화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몇몇 장면은 3월, 봄날 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학창시절 내내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남자 주인공이 졸업 날, 꾹꾹, 자신의 마음을 눌러 편지를 쓰던 모습, 편지를 읽으며 수줍은 미소를 짓던 여자 주인공의 모습, 또 공중전화로 사랑을 속삭이고 있던 그들의 모습…. 그렇게 영화는 지나간 그리운 것들을 하나둘 씩 호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 역시, 볕 좋은 창가에 앉아 한줄 한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노래,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가 절로 흥얼거려지던, 돌아보면 편지로 인해 행복 할 수 있었던, 위로가 되었던 날들을 하나둘 씩 떠올려 보았다.

나는 겨울에 군대를 갔다. 훈련소 시절, 어머니가 보낸 서투른 글씨에 담긴 애정 어린 편지는 눈 속을 헤치고 따온 붉은 산수유 열매만큼이나 따뜻한 것이었고, (그전까지 나는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의 ‘우체부 아저씨 감사합니다’에 담긴 풋풋한 편지들은 그 혹독했던 겨울을 견딜 수 있었던 원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날들도 있었다. 한통의 편지가 우체통에 툭, 떨어지는 순간부터 마음은 계속 편지의 뒤를 따라가고, 편지가 결국 그 사람에게 닿을 때까지, 자신이 쓴 편지를 읽고, 또 읽는 반복 재생이 야기되는 설렘들. 우리는 아마 같은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그렇게 밀도 높은 교감을 나누던 날들을 잊을 수 없다.(한번이라도 연애편지를 써 본 사람이라면 이 마음 알 런지도.)

그리고 지난 3월, 이곳 교단일기에 글이 실렸던 날, 나는 뜻밖의 편지와 메시지를 받았다. 편지는 나의 글에 공감과 감동이 되어 마음을 전하게 되었다고, 선생님의 독자가 되어 다음 글을 또 기다리겠다는 눈물이 날 뻔한 감격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아 독자라니, 나는 갑자기 작가라도 된 듯한 우쭐한 기분과 함께 봄 비 내리던 그날의 하루는 내내 따뜻함이 머물렀던 날이었다.

우리 학교는 1년에 4번, 고마운 분께 편지 쓰는 날이 있다. 4월의 주제는 ‘사랑하는 부모님께’였다. 힘내세요. 사랑해요. 언제나 고맙고 미안해요. 편지글 말미에 또박 또박 쓴, 짧고 익숙하지만 그 어느 말보다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이 말들은 엄마의, 아빠의 삶을 견디게 하는, 아니 그들의 일상에 불쑥 불쑥 힘을 솟게 하는 삶의 특수효과가 아닐런지.

그래. 사랑도, 글쓰기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일들의 하나가 아닐까.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 편지를 받고 행복해 할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은 근사함의 최강이 아닐까. 하여튼, 혼자서 영화를 보고 오던 그날은, 한적한 동네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수북이 동전을 쌓아 놓고서 그리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그런 봄날, 밤이었다. 공중전화 위에 쌓인 동전과, 동전이 뚝뚝, 떨어지던 그 통화의 긴장감조차도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밤이었다. 장문의 긴 편지를 쓰고 싶었던 봄, 밤이었다.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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