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밖에 부슬부슬 내리는 장맛비처럼 논새의 쟁은 끊어질 듯 다시 울었다. 추녀 끝에는 들리는 낙수소리와 쟁의 소리는 묘하게 어울려 사내의 풍정을 울렸다.

주각의 안채는 수묵화 한 폭과 홍등이 걸려 있어 빛과 그림자가 뒤섞여 얼룽거리고 논새의 좁고 가녀린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논새의 체취에서 풍겨나는 훈향이 코끝을 아련하게 했다.

무가는 두강주의 두루미를 뒤집어 마지막 잔을 채웠다.

‘이 잔을 마시고 논새를 베리라. 베기엔 아까운 여자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무가는 이 여자를 베는 것을 시작으로 소아성과 그 사병을 진멸하고 명림원지와 하지왕의 목을 베어 역모를 완전히 진압하리라 생각했다.

무가가 마지막 잔을 들고 들이켜려는데 갑자기 선율이 끊기더니 논새가 잔을 뿌리치고 장군의 품에 안기며 흐느꼈다.

잔이 반상에 뒤집어지며 술이 흘러내렸다.

“장군님, 마시면 안돼요. 이 잔에는 독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이 술에 독이 들었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지금까지 이 두강주를 셋이 나눠 마셔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논새 너는 계속 쟁을 탄주하고 있지 않았는가. 독을 섞을 틈이 어디 있었단 말인가.”

“아까 제가 짐독에 절여 말린 대추 한 알을 두루미병에 몰래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지만 지금쯤 독대추가 불어터져 마시면 죽거나 사지가 마비됩니다.”

무가가 두루미병을 뒤집어 흔들어보니 과연 불어터진 대추 한 알이 굴러나왔다. 무가는 논새의 말을 믿지 못하여 주각의 개에게 독대추를 먹였다. 개는 독대추를 삼키고는 잠시 후 몸을 뒤집고 허공을 향해 네 발을 부르르 떨더니 옆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무가가 미리 조심하고 경계했지만 말린 독대추를 넣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는 못했다.

“고얀지고, 어째서 감히 나에게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무가는 칼을 빼어 논새를 베려고 했다.

“소녀를 죽여주옵소서.”

논새는 눈물을 흘리며 자초지종을 말했다.

“저는 원래 고구려 여인으로 명림가의 먼 일족입니다. 집안의 어른인 명림원지가 뇌옥에 갇힌 뒤로 저희 집안은 몰락하여 생업에 따라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는 이곳 주각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사물성 뇌옥의 노역수 텁석부리로부터 명림원지의 전갈을 받고 소아성 나으리에게 연락하여 이런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소아성, 네 이 놈을 당장!”

논새가 무가에게 매달리며 말했다.

“소아성 나으리는 제가 독주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다만 장군님을 유혹하여 내일만 조당에 나오지 못하게 하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논새는 가녀린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우리말 어원연구

섞다. 【S】sukhida(서키다), 【E】bl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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