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사람속(Homo Genus)’에 속한 유일한 ‘종(Species)’이다. 인류의 등장 이래 수많은 종이 있었으나 웬일인지 현재는 호모 사피엔스 하나다. 그렇다면 왜 호모 사피엔스는 유일한 종이 되었을까?

약 3만 년 전까지만 해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sis)가 현생인류와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멸종하고 만다. 수십만 년 간 유라시아 대륙의 혹독한 환경변화에도 생존했던 그들이었으나 그야말로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급격한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든가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도태되었다는 등 수많은 분석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멸종시기가 호모 사피엔스의 유라시아 대륙 진출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점은 그들의 멸종에 호모 사피엔스가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의 멸종을 마지막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유일무이한 종이 되었고, ‘사람속’의 다양성은 실종되었다.

타 호미닌의 멸종에 기여한 호모 사피엔스의 이후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동식물들은 멸종되기 십상이고, 생태계는 그 자연스러움을 잃어갔다. 거기다 그들 내부에서의 다툼까지 시작된다. 이러한 탐욕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더욱 악화되었고, 과도한 경쟁을 이겨내지 못한 수많은 소수문화들은 소멸되어 갔다. 그 결과 인류의 삶은 단순화, 획일화돼 다양성의 힘은 점점 상실되었다.

인류학자인 팻 시프먼은 호모 사피엔스를 ‘침입종’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외부에서 침입해 다른 생물들의 서식지를 점령하고 파괴한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인류는 여기에 한술 더 떠 다른 동물이 아닌 같은 종족까지도 침략하는 행위를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동족상잔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류의 잔혹한 행위를 멈추고 서로 공존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은 없는 걸까?

그 해답은 다양성의 추구에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행해왔던 파괴행위들이 다양성의 실종을 낳았다면 이를 회복하기 위해선 다양성의 추구는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그 실천방법은 너무 광범위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쉽게 생각해야한다. 우리가 멸종위기의 동식물을 직접 구제한다든가 종교전쟁을 멈추게 하는 일 등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다양성의 기본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가장 작은 단위에서의 ‘존중’이 다양성의 핵심이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이웃, 동료, 친구 등에게 행하는 작은 존중이 다양성의 시발점인 것이다. 다양성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못해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지금 당장 우리 곁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존중의 자세를 취해 보자. 그리고 그 존중의 범위를 넓혀가다 보면 어느 순간 다양성은 우리들 삶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리한 다양성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킴과 동시에 나아가 인종, 종교 등의 이슈로 촉발되는 여러 사회현상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또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통찰력을 선사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항상 작은 변화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지금이 다양성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작고 소중한 기회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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