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경제문제등 포함한
노년기 포괄적인 자립생활 준비
늘어난 수명에 맞춰 생애설계를

▲ 강혜경 경성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 부산의 ○○복지관에서 80대의 그녀들을 만났다. 열분의 그녀들은 일명 ‘할망’이지만 화사한 스카프와 옅은 화장으로 봄날을 즐기고 계셨다. 살아온 시간 중 늙어가며 학생이 된 지금, 복지관으로 친구들과 나들이 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셨다. 구체적으로 말씀해달라고 했더니, “아직은 건강해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고,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고, 마음을 알아주고 나눌 친구가 있으니 최고지”라고 하셨다.

나이 들면 경제력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여쭈었더니, “넉넉하면 좋지만 옷도, 가방도, 먹거리도 적절히 있으면 되었고, 외롭지 않고 소일거리가 있으면 행복한 거다”라고도 하셨다. 노년기에 자녀들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다시 여쭈었더니, “힘들여 키웠으니 잘 지내고 있으면 되었고, 이제는 본인이 아프지 않고 매일 신나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다. 노년기, 자기 자신을 돌보는 독립적 삶의 셀프 부양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셨다.

4회기의 집단이 진행되며 굽이굽이 풀어내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남편을 여의고 건설현장 노무자로, 안 팔아본 것 없는 노점 장사로, 평생 돌봄이라고는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모진 삶에 대한 아픔이었다. 그래서 다음 생은 “여자가 아닌 남자로, 문디 같은 남편도 버릇없는 자식과도 인연일랑 맺지 말고, 자유롭게 여행도 공부도 하며 멋지게 훌훌 살아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이 들어보니, 역할도 눈치도 볼 것 없이, 그렇게 훌훌 살아볼 수 있어 좋다고 하셨다. 자식의 도리도, 부모로서의 역할도 다 내려놓고, 새벽부터 하루 종일 일하지 않아도 되고, 늦게 일어나도 되고, 느리게 해도 되고, 자유롭다고 하셨다. 늙으면 다 안 좋은 것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라고 하신다. 평생 억척같이 살아온 그녀들, 80대가 되어 이제 자신들을 돌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미래가 오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나이가 92세를 돌파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향후 5년 동안 700만 명의 은퇴 폭탄이 예측되고 있다. 길어진 생애주기, 누구도 경험하지 않은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위한 생애설계(life planning)가 필요해졌다. 그러나 정작 노년기를 위한 준비는 경제적 문제에 국한돼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누구와 어우러져 살 것이지, 어디서 살 것인지 등 노년기 전반적 삶에 대한 통찰은 부족한 실정이다.

급변하는 사회, 저출산과 저성장의 시대, 베이비붐 세대는 당장 눈앞의 노년기를 대비한 생애설계가 절실해졌다. 살아보고 싶은 삶을 위해서는, 노년기 특성(신체, 심리, 활동, 관계, 경제 등)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셀프부양의 자립생활을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준비해야 한다.

○○복지관을 통한 그녀들의 자조모임은 3년차를 접어들었다고 한다. “할망구들이 따로 살지만, 필요하면 가까이 있는 할망끼리 모여서 한집에서 밥도 같이 먹고(밥상공동체), 때로 싱숭생숭하고 외로우면 마음 알아줄 할망도 부르고(또래공동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자조모임이 노년기 할망들에게 사회활동 영역이자 놀이터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사실, 자조모임은 독거노인 중 우울감이 높은 분들을 위한 사례관리 집단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역사회의 또래집단으로, 그녀들은 자조모임을 통해 서로 돌보고 지지함으로써 개별 차이는 있지만 우울감을 극복하고 심리적 지지와 연대감을 형성한 것이었다. 올해 자조모임은 동년배 친구들을 찾아 골목상담을 나간다고 한다. 노년기 그녀들에게 사회참여와 소통 나아가 개인적 보람과 자존감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2시간 집단 수업 중 “아이고 허리야” 하시며 서 계셨던 할망들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평생 억척같이 살아낸 그녀들이 인생학교에서 배운 연륜으로 잘 이끌어 가실거란 기대가 된다. 문득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놀이를 그만 두는게 아니다. 놀이를 그만 두니깐 늙는 것이다’ 그녀들 생애 최고의 봄날, 노년심리학에서 읽었던 올리버 웬델 홈즈의 짧은 문구를 기억해 본다.

강혜경 경성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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