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선영 울산대교수·수학과

어떠한 원이든 그 둘레를 지름으로 나누면 일정한 수(π)가 된다. 이 신비로운 사실을 인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기록이 있다.

기원전 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를 3으로 한 기록이 있다. 기원전 1650년경 아메스에 의해 기록된 이집트의 린드 파피루스에도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를 3.16으로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10세기 이스라엘의 솔로몬왕 때에 성전을 짓는 기록이 수록된 <열왕기상>과 <역대하>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지름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고 그 고는 다섯 규빗이며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라는 구절이 있다.

고대 수학사에서 π를 극적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은 역시 그리스인들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원에 내접한 다각형과 외접한 다각형을 이용해, 원의 면적의 근사치를 구하면서 223/71<π<22/7임을 알아냈는데, 이 두 수의 평균은 3.141851이다.

5세기경 중국 송나라의 조충지도 π를 336/113으로 소숫점 7자리까지 π의 값을 정확히 구했는데, 이는 15세기까지 가장 정확한 원주율이었다

π가 사람들을 얼마나 매료시켰는지, 16세기 독일의 수학자 루돌프는 거의 평생을 바쳐서 소수점 아래 35자리까지의 원주율을 계산했고, 영국의 수학자 샹크스도 20년이 걸려 1873년경에 소수점 이하 707자리까지 원주율 값을 계산해냈다. 그러나 후에 소수점 이하 528자리 이후는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π에 대한 연구는 그에 대한 계산을 넘어, 1761년에 독일의 람베르트는 π가 분수로 표현될 수 없음을 밝혔다. 독일의 린데만은 π가 계수가 유리수인 어떤 다항 방정식의 해도 될 수 없는 초월수임을 증명했는데, 초월수가 무한히 많은 것은 알려져 있으나 알려진 초월수는 많지 않다. 대수 방정식의 근이나 제곱근의 형태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원주율을 끝자리까지 계산해내려는 수학자들의 노력을 중단시켰다.

장선영 울산대교수·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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