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하지왕이 명림원지에게 말했다.

“하지만 박지는 아들까지 왕으로 앉힌 마당에 쉽사리 물러나겠소?”

“박지의 아들 구야는 신라조차도 왕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최강인 고구려의 힘을 빌지 않으면 설사 무력으로 대가야를 찾는다고 해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당장 고구려로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난 와륵선생이 나와 동행했으면 좋겠소.”

“하지왕께서는 혼자의 힘으로 충분히 광개토대왕을 설득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 명림가는 고구려의 명문가문이었으나 반역을 일으키다 실패해 남으로 도피해왔습니다. 그동안 저는 산채에서 우사, 모추, 수수보리와 함께 대가야 왕업의 설계도를 그리겠습니다.”

“알겠소.”

하지왕은 젊은 나이에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어차피 현재 산채의 녹림병력으로는 대가야를 찾을 수 없다. 사물국이 전 병력을 동원해 돕는다고는 하나 소아성 한기도 갓 정권을 잡은 데다 비토섬에 상륙한 왜와 일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 형식적으로 도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명림원지의 말대로 광개토대왕의 책봉을 받는 것이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왕은 검바람재 산채를 떠나 고구려를 향했다.

그의 곁에는 칼을 품은 자객 구투야가 있었다.

‘책봉이 안 되면 암살하라? 거친 구투야의 성격을 봐서 책봉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품에 품은 단검을 뽑아 광개토대왕을 해하려 할 것이다. 구투야는 칼 그 자체이다. 나는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검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대왕에게 책봉을 바라는 나와 대왕을 죽이고자 벼르는 자객을 동시에 보내는 명림원지의 웅숭한 속셈을 알 수 없다.’

둘은 대가야의 우회로와 성산가야를 지나 중원으로 갔다. 아리수를 건너 평양성으로 들어가니 옛 생각이 사무치게 떠올랐다.

가을 해는 중천으로 떠올랐고, 고개를 넘자 평양 자작나무 숲의 미끈하고 흰 나무껍질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계곡과 등성이를 타고 올라온 산 향내가 물씬한 바람이 목덜미와 겨드랑이를 시원하게 씻어내고 숲속에서 지저귀는 다채로운 새소리가 아름답게 들렸다.

영마루 아래로 번성한 평양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평양은 예로부터 유서 깊은 고조선의 도읍이자 낙랑군의 군현으로 인구와 고루거각이 많고, 대동강이 서해로 열려 있어 중국과 왜와의 무역이 활발했고 시장이 번성한 곳이다.

광개토태왕은 평양을 중시해 즉위하자마자 평양성과 평양궁을 새로 중수하고 아홉 개의 절을 지었다. 평양성의 성곽과 문루가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정림사를 비롯한 구사의 금당이 기러기처럼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듯 앉아 있었다.

하지왕은 영명사를 보면서 평양에서 왕과 질자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아, 저곳에서 광개토대왕에게 제왕학을 배우고 거련태자, 상희 공주, 백제의 질녀 다해, 신라의 대군 실성과 어울렸지.’

 

우리말 어원연구

아리수: 한강, 한강의 옛말이 ‘아리수’라는 사실은 광개토대왕릉비를 통해 최초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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