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에 일상화가 된 구조조정
일자리가 없으면 워라밸도 무용지물
노동자성장 위해선 기업성장도 필요

▲ 신형욱 사회부장

5월1일은 근로자의 날(노동절)이었다. 1886년 5월1일 열악한 노동환경과 적은 보수에 시달리던 미국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 쟁취와 유혈탄압을 가한 경찰에 대항해 투쟁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국내에서는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민주적 노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분출한 노동자대투쟁이 있었다.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결성, 어용노조의 민주화, 대폭적인 임금인상 등의 성과를 성취하며 노동 조건이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올해 근로자의 날을 맞이한 울산의 노동자들에게서 미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조선업 침체로 대변되는 제조업 위기 속에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다시피 하면서 노동 조건을 넘어서 언제 직장을 잃을 지 불안한 상황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울산 경제를 이끈 대표적 주력업종인 조선산업은 여전히 깊고 어두운 터널의 연속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도 수주 절벽에 일감이 줄어들자 위기 극복을 위해 2년 만에 다시 지난달 희망퇴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6·13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으로 여야와 중앙·지방정부를 떠나 표 계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시점이어서 사회적으로도 극심한 반발이 예상됐음에도 불구 구조조정 카드를 꺼낸 것이다. 노조는 이미 쟁의행위를 결의하고 파업 찬반투표까지 마친 상태다. 회사는 회사대로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라며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변하고 있다. 같은 그룹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도 희망퇴직을 함께 시행했다.

조선업계 뿐만 아니다. 제조업체 대부분에서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제조업 가동률이 70.3%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달 수출도 50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했다. 전년 대비 수출이 줄어든 건 2016년 10월 이후 18개월 만이다. 기업으로선 경영의 고삐를 더욱 바짝 조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 존중’을 새 정부의 핵심 기조로 삼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발표한 메시지에서 “모든 성장은 노동자를 위한 성장이어야 한다.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보다 더 큰 성장은 없다”고 규정했다.

아직까지도 열악한 환경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노동자들도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노동의 가치가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다. 여기에 더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기업가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선 기업인들과 상공인 등을 만나다 보면 현 정부의 기업·노동정책에 대한 쓴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가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를 강조하면서 근로자들의 지위는 향상됐지만 사업자들의 경영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불만이다. 한 기업체 관계자는 “정부나 지자체가 일자리 창출이나 고용안정에 목소리를 키우고 있지만 정부와 근로자의 의지만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지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꿈꾸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현재진행형인 구조조정이 계속돼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기는 힘들다. 노동의 존엄성은 당연히 지켜져야 할 가치다. 하지만 노동을 하고 대가를 받기 위해서는 일할 텃밭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를 위한 성장은 곧 텃밭의 성장이기도 한 셈이다.

당분간 울산 경제, 특히 제조업에서의 경영 위기가 계속돼 노사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위기극복에 노사가 따로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족스럽진 못하더라도 노사가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위기극복을 위해서 노사가 백지장도 맞들면 낳다는 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제대로 된 근로 환경 만큼이나 사업하기 좋은 기업 환경을 만들어주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노사가 함께 기쁘하고 축하하는 2019년 근로자의 날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신형욱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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