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광개토태왕이 누워 있는 침전에 거련 태자가 들어왔다. 거련의 좌우에는 장화왕후와 상희공주가 시립해 있었다. 음식을 넘기지 못해 들피져 침상에 누운 부왕 앞에 선 거련의 풍모는 당당했다.

태왕이 거련에게 말했다.

“아들아, 나를 좀 일으켜다오.”

“예, 아바마마.”

거련은 침상 등받이에 베개를 받히고 비스듬히 앉혔다. 빗지못한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나를 일으키는 네 손에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아바마마께서 젊으실 때 비하면 전 여전히 약골입니다.”

“힘을 아껴야 하느니라. 난 이른 나이에 청청한 기운을 전쟁터에서 탕진했다.”

태왕은 불혹에 미치지도 못하는 나이 서른아홉에 병상에 자리보전하고 말았던 것이다.

거련이 어려서 처방약을 먹여도 아이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되고 밥을 먹지 못하고 죽어갈 때 태왕은 말했었다.

“거련아, 구수한 밥 냄새, 국 냄새가 나지 않느냐. 한 숟갈만이라도 먹어보지 않겠나. 이 냄새를 맡고 멀리서 골목강아지 주막강아지까지 뛰어오는데 너는 어찌 밥을 외면하느냐.”

헌데 지금은 오히려 거련이 아버지에게 미음이라도 한 술 들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한 한 세대가 가면 새로운 세대가 물려받는 것이 자연과 역사의 이치다. 천하를 호령하던 국강상광개토호태왕도 기름이 말라버린 밀초 심지처럼 까무룩하게 꺼져가고 있었다. 반면 청년 거련은 동산에 떠오르는 해처럼 얼굴에 붉은 광채가 나고 눈빛이 옥구슬처럼 반짝였다.

태왕이 거련에게 말했다.

“아바마마, 힘을 내셔야 합니다. 반드시 병상을 떨치고 일어나실 겁니다.”

태왕이 거련에게 말했다.

“아니다.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천문박사, 시의, 약의원, 천녀들까지 여러 가지 감언으로 멀지 않아 자리를 떨쳐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내 병을 잘 안다. 전쟁터에서 많은 젊은 병사들이 나와 같은 역병에 걸려 죽었지.”

태왕의 목소리는 잦아들었으나 여전히 위엄은 있었다.

“거련아, 내가 죽으면 너는 슬퍼서 울겠지. 하지만 친구가 죽을 때는 그 울음이 진실되지만 애비가 죽을 때는 울고 난 후 뒤에서 몰래 웃게 되지. 왜냐하면 애비로부터 가장권과 재산을 물려받게 되기 때문이지. 특히 왕권과 고구려 천하를 물려받게 되는 너의 웃음은 주체할 수 없을 거야.”

장화왕후가 다소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웃음을 주체할 수 없다니오? 아들에게 너무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

태왕이 힘없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도 부왕이 돌아가셨을 때 슬퍼 울었지만 측간에 가서는 웃었지.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고구려를 움직여보겠다는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지더군.”

 

우리말 어원연구

빗다. 【S】vishita(비시타), 【E】comb. 우리 고어는 ‘비시다’가 원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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