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心-김봉석作 :문자는 의사를 전달하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표정은 문자가 담을 수 없는 심상의 솔직함이 드러난다. 문자면서 형상이니 다채로울수 밖에.

닭을 물어 죽일 뻔한
고양이 알콩이의 사고가
싱싱한 푸성귀로 돌아온 날
정겨운 시골인심
반갑고 따듯함 새삼 깨달아

알콩이가 사고를 쳤다. 처음엔 또 어디서 비둘기를 잡은 것이려니 여겼다. 혀를 내두를 만한 알콩이의 사냥실력을 아는 까닭이다. 잠자리와 나비는 물론 새를 잡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날것도 쉽게 잡는 정도니 쥐나 뱀은 우리 집 주변엔 얼씬도 못한다. 언젠가 펜스 위에 앉은 비둘기를 노리는 걸 보았다. 발걸음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눈길이 저절로 따라 움직였다. 펜스 아래까지 갔구나, 여긴 순간 쏜살 같이 뛰어올랐다. 그제야 움찔하던 비둘기는 잡히고 말았다. 거뭇한 털의 비둘기를 이리저리 던지며 놀던 알콩이가 물고 나타난 까만 새가 비둘기려니 여긴 것이다.

알콩이는 길고양이였다. 털빛도 예쁘지 않고, 꼬리도 짤막했다. 게다가 비쩍 마른 모습이 눈길을 끌 만한 데라곤 없었다. 그런 녀석을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가 주워 온 지 일 년. 사랑 받는 법을 태생적으로 타고 났는지 애교가 수준급이었다. 사람만 보면 배를 뒤집는 건 물론 어찌나 주위를 뱅뱅 도는지 실수로라도 밟을까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는 일 년 사이 조막만 하던 녀석은 성묘(成猫)가 되었다. 작년 가을에는 성묘답게 추수해둔 땅콩을 노리던 청설모까지 잡는 사냥꾼이 되어 우리를 흡족하게 했다.

“크림아! 안 돼!”

알콩이를 무심코 바라보는데 비명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웃집 여자였다. 이웃여자는 물 빠진 듯 희끗희끗한 갈빛 털의 알콩이를 크림이라고 불렀다. 문을 열고 나갔더니 여자는 사색이 되어있었다. 알콩이가 언덕 위의 집에서 기르는 오골계를 물고 갔다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비둘기려니 여겼던 새가 오골계였다니 알콩이를 말려야 했다. 한쪽 구석에서 내 눈치를 살피는 알콩이에게서 오골계를 떼어냈다. 물린 곳은 목덜미였다. 알콩이를 강제로 떼어낸 자리의 털이 한 움큼 빠진 채였다. 알콩이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쫓아도 오골계를 잡고 있는 내 주위를 뱅뱅 돌았다. 가까스로 포획한 놀잇감을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는 듯했다. 고양이의 이동장에 오골계를 넣었다. 문을 잠근 뒤에도 알콩이는 이동장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일반 닭보다 비싸다는 이웃여자의 말에 걱정이 앞섰다. 물어줘야 할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행여 죽기라도 하면 어쩌나, 얼굴도 본 적 없는 이웃을 대할 일이 막막했다. 요즘은 시골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지독할 만큼 배타적이라는 말도 들었다. 시골로 옮긴 지 여섯 해째지만 아직 체감한 적은 없지만 신경이 쓰였다. 오골계는 가끔 날개를 퍼덕일 뿐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애가 바짝 탔다.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면서 부디 살아나기만을 바랐다. 간절한 맘으로 이동장을 들고 언덕 위의 집으로 갔다. 초조함이 담긴 초인종 소리에도 기척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해거름까지의 두어 시간이 이틀만큼이나 길었다.

퇴근한 남편과 손자를 데리고 다시 언덕 위의 집을 찾았다. 마당 한 쪽에 지어둔 닭장이 눈에 띄었다. 족제비나 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인 듯 기둥을 세운 위에 튼튼하게 지은 닭장이었다. 닭장 아래 풀어놓은 오골계들이 땅을 파거나 무언가를 쪼아 먹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크고 작은 오골계가 여남은 마리는 됨직했다. 다시 걱정이 앞섰다. 행여 얼굴 붉힐 일이 생기면 어쩌지, 생각하면서 이동장을 확인했다. 오골계는 죽은 듯 조용했다. 죽은 거 같다며 조바심을 내는 손자를 달래놓고 초인종을 눌렀다. 얼마 뒤에 주인부부가 나타났다. 고양이를 놓아 기르다보니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며 안절부절못한 채 주절거렸다. 구차한 변명을 듣던 남자가 이동장의 문을 열었다. 꼼짝 않고 있던 오골계가 푸드득, 날갯짓을 했다. 주인남자가 얼른 잡아서 이리저리 살피는 사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괜찮습니다. 방목을 할 때는 더러 더 센 놈한테 물려죽기도 하고, 잃어버리는 놈도 있으려니 각오한 건데요, 뭐. 이건 아직 어린 녀석인 데다 다친 데가 없으니 갖고 오셨지만, 다음에 큰 닭을 물고 가거든 그 댁에서 잡아 잡수이소.”

호탕한 반응에 어리둥절한 것은 우리였다. 남자가 검은 닭들이 모여 있는 곳에다 우리가 갖고 간 닭을 힘껏 던졌다. 꼬꼬거리며 닭이 무리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자 마음이 놓였다.

남자는 곧장 텃밭의 푸성귀를 뽑으라고 아내를 채근했다. 아내의 손길도 거침이 없었다. 보기에도 기름진 텃밭의 푸성귀를 뭉텅뭉텅 뽑았다.

“요즘 보기 드문 집이라 늘 부러웠습니다. 아들손자까지 3대가 한 집에 사는 일이 어디 흔한가요?”

식구도 많아 유기농 채소를 줘도 버릴 일이 없으니 그 또한 기쁨이란다. 엉거주춤한 채 주인여자가 내민 푸성귀를 받았다. 그 마음이 고맙고 미안했다. 정겨운 시골인심이 반갑고 따듯했다. 닭을 물어 죽일 뻔한 알콩이의 사고가 싱싱한 푸성귀로 돌아온 날. 시골인심은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 김봉석 서예가

■ 김봉석씨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예과 졸업
·계명대학교 예술대학원 미술학과
서예전공 졸업(미술학석사)
·개인전 11회(부산, 울산)
·뿌리있는이름석흠실 주재
 

 

 

▲ 장세련 자가

■ 장세련씨는
·1988년 창주문학상 동화당선
·1998년 아동문예 문학상 동화당선
·장편동화 <마법의 지팡이>외 10권의 창작동화집,<대왕암 솔바람길>외 2권의 스토리텔링 출간
·울산문학상, 울산아동문학상, 울산펜문학상 등 수상
·현재 도서관 독서지도 및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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