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거련이 부왕 광개토태왕에게 말했다.

“아바마마, 솔직히 말씀드려 어린 저는 아버지의 왕국을 물려받을 자신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힘이 있으십니다. 반드시 건강을 회복하셔서 이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태왕이 침상에 기댄 채 말했다.

“나는 열일곱에 보위를 물려받아 이 나라를 다스렸다. 넌 나보다 더 위대한 군주가 될 것이다.”

“저는 어리고 미거하여 조그만 산골짜기 나라인 고구려를 동북아의 최강으로 만든 아버지의 발끝조차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아바마마의 위무는 위로는 황천에 미치고, 북으로는 숙신부터 남으로 삼한까지, 서로는 거란부터 북연까지, 동으로는 예맥에서 동부여까지, 남으로는 백제 신라 가야 왜까지 사해에 떨치셨습니다.”

“과연 그럴까? 난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구나. 설사 했다 하더라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의 맹장들과 충신, 병사들과 함께 한 것이지.”

장화왕후가 부드럽게 왕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폐하, 그러면 충신들과 사관을 불러 들여 폐하의 업적을 보고하고, 그들 앞에서 확실하게 태자의 후계를 알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태왕은 장화왕후를 근심스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자신의 소생인 거련을 보위에 올리려고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다하는 여인의 욕망을 읽는 듯이 찬찬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왕후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평생 시기와 질투로 궁중 암투를 벌이고 소후와 비빈의 자식들을 변방으로 내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해 자신의 마음을 힘들게 한 무서운 여인이다.

태왕은 그의 자녀들을 헤아려보았다. 그동안 죽은 아이를 제외하고 낳은 아이가 13명이었다. 왕자 여섯은 지금도 살아 거련 태자와 보위를 경쟁하고 있고 그중 애첩 소향의 아들, 막리는 지혜와 인덕, 용맹을 두루 갖춰 열일곱의 나이에도 2관등인 태대형을 맡고 있었다. 한때 태왕은 거련이 지나치게 약은꾀를 부릴 때는 막리를 태자로 삼을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죽으면 막리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린 시절 거련과 지혜를 겨룬 질자 꺽감마저도 질투한 여인이었다. 꺽감과 소후 여옥을 죽이려고 했고 지금은 자기의 하수인인 박지를 움직여 소후를 유폐시키고 대가야의 왕자, 꺽감의 보위를 빼앗아 지금 상갓집의 개처럼 다니게 하는 것도 장화왕후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도도하게 흘러내려오는 고구려 왕국의 본류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개인의 감정문제를 국사에 끼워 넣어 왕업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거련은 저렇게 물이 올라 있는데 말라죽어가는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

태왕이 장화왕후에게 무겁게 말했다.

“중신들과 사관을 불러오시오.”

 

우리말 어원연구

듯이. 【S】dhish(디시), 【E】seem, dis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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