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학급 환경미화를 하면서 교실 뒤편 게시판에 반 아이들과 나의 꿈을 적어서 붙여두었다. 축구 얘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이는 누구는 축구 에이전트라고 써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체육시간이 즐겁다는 누구는 체육교사라고 써냈다. 비행기 정비사, 유튜버, 국어교사, 과학자, 내과의사, 공무원 등 그들의 꿈 사이에 두 글자인 나의 꿈도 함께 써서 붙였다. 담임 이정현의 꿈, ‘스승’.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 법)이 시행된 후로 스승의 날은 평소처럼 수업을 하기엔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하루가 되었다. 어떤 학교들은 스승의 날을 재량휴업일로 정하기도 한다고 했다. 우리 학교는 5월 중 적당한 금요일에 하던 체육대회를 작년부터는 스승의 날에 맞춰서 열고 있다. 공식 행사는 없지만 스승의 날 느낌이 나도록 선생님과 학생이 2인3각 달리기도 하고, 선생님 대 학생으로 팀을 나누어 줄다리기 경기도 한다. 몇 주 남지 않은 체육대회를 기다리며 학급 단체 티셔츠를 주문하던 동료 선생님 한 분이 말씀하셨다. “그래, 그날은 체육대회 하는 게 마음 편해서 좋아.”
스승의 날은 처음부터 스승의 날이라 불리지는 않았다. 충남 지역에서 은사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선생님을 위한 사은행사를 개최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한글을 창제하여 백성들의 의식을 깨우치고자 한 세종대왕의 탄신일로 날짜가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한글을 만들어 그들이 더 쉽게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왔기에 세종대왕은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학교에 발을 내디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내가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될 누군가의 스승이고 싶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오면 수업은 물론이고 생활지도도 자신이 목표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고, 점심 식사 직후에 상담을 하고, 오후 수업을 마치고 행정 업무를 하다보면 어느 새 퇴근 시간이 지나 있는 게 다반사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을 향해 베풀어준 관심과 애정만큼의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기는커녕 무시, 냉대, 심하면 욕설을 듣는 일도 생긴다. 경력이 한 해씩 늘어갈수록 더 많은 것을 꾹꾹 참아 넘기게 되고, 또 더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다.
얼마 전 스승의 날을 폐지해달라고 청원했다는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라디오 인터뷰 내용을 읽었다. 선생님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분위기에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교권 추락까지 어느 것 하나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 선생님의 말처럼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선물을 받고 싶어 하는 교사는 1도 없을’것이기에 스승의 날은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답례를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선생님들이 나의 꿈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1년에 하루 정도는 있어야하기 때문에.
졸고를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 여러분을 가르치셨던 선생님, 또 여러분의 자녀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의 꿈은 스승이라고.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지금보다 어려운 근무 환경에 처한다고 해도 학교에 있는 수많은 선생님들의 꿈이 스승이 되는 것임은 변치 않는다고 말이다.
이정현 남목중학교 교사